"지속가능한 마이스(MICE)는 기획·설계 단계에서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마이스 기획 역량을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죽이고 있어요."
마이스투데이 창간을 맞아 진행된 인터뷰에서 윤영혜 동덕여자대학교 글로벌MICE학과 교수는 "ESG는 단순 트렌드가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화여대 국제회의센터에서 국제회의기획자(PCO)로서 차곡차곡 쌓아온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현장과 이론을 접목한 융합연구에 매진해온 윤영혜 교수는 "마이스는 탄소배출이 집약된 산업"이라며 "참가자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교통부문 배출이 많고, 폐기물도 많이 배출되는 특성이 있지만 어떻게 이것을 줄이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이미 마이스에 대한 세부 메뉴얼까지 정립해놓고 이에 따르고 있지만 국내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며 "마이스분야도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바뀌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이 흐름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 '지속가능한 마이스'는 필수...'기술'과 융합해야 마이스는 사람이 모이는 산업 특성상 탄소배출이 많다. 게다가 배출원을 추적하는 것도 원천적으로 쉽지않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탄소배출을 줄이는 1차적 방안이 탄소상쇄지만, 단순히 돈을 주고 탄소상쇄권을 사는 방식도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탄소중립 및 ESG 달성에 있어 기술과의 융합이 중요하다고 윤 교수는 강조했다. 매립을 최소화해서 재활용 비중을 늘리는 등 계량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아이맥스(IMEX)는 지속가능한 마이스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행사로 꼽힌다. 아이맥스는 행사 기획단계부터 환경 목표와 방법론을 수립하고, 매년 '지속가능한 행사' 보고서를 통해 탄소감축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행사에서는 폐기물의 95.5%를 재활용하거나 에너지로 전환해 쓰레기 매립률이 0.5%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회용 플라스틱 소재의 이벤트 제품도 5%에 불과했다. 일회용품은 100% 퇴비화 가능한 재료로 만들고, 재활용·기부 등을 통해 행사 폐기물 86%를 자원으로 전환했다. 참석자가 전년대비 26%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1인당 폐기물은 3kg 감축하고 에너지 사용률은 12% 줄였다.
윤 교수는 "해외에서는 대부분의 컨벤션뷰로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공시하는 추세"라면서 "보고서에는 폐기물처리부터 계량분석법 등을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 교수는 "물론 서울시도 마이스의 ESG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는 등 국내에서도 ESG 매뉴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 "그러나 패널티도 없고 인센티브도 없다보니 실질적으로 전혀 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짚었다.
사실 해외에서는 ESG보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개념이 더 통용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ESG는 지속가능성과 맞물려 중요한 흐름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외 관람객들이 국내 행사에 참여했을 때 지속가능성이 결여된 모습을 본다면, 국내 마이스 산업은 국제흐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이스 업체 차원에서 전시장 폐기물을 감축하는 등 탄소감축을 주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윤 교수는 말한다. 그는 "어떤 경우는 친환경 현수막을 걸었다가 발주처로부터 컴플레인을 받기도 한다"면서 "친환경 현수막은 인쇄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시장에서 사용되는 현수막이나 기자재 모두 발주처가 용인해줘야 가능하므로, 마이스 업체 입장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은 셈이다.
윤 교수는 또 "공공기관들이 ESG경영을 도입하면서 전시박람회나 축제행사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감축하기 위해 발주처에 탄소배출권 구매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런데 탄소배출권 구매비용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ESG경영을 실천할 의지가 있다면 행사를 발주할 때부터 탄소배출권 구매를 예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메타버스를 이용해 이동에 따른 배출량을 줄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윤 교수는 이같은 의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이 모이는 마이스 본연의 산업 행태와 동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마이스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와야 한다"며 부득이한 상황에서, 혹은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온라인 하이브리드 형식을 빌릴 수는 있지만 전체 행사를 비대면으로 전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전시회는 실물을 보고 싶어하는 니즈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윤 교수는 덧붙였다.
◇ 인력부족한 마이스업계...'컨벤션뷰로' 육성해야 윤 교수는 '지속가능한 마이스'가 되려면 그에 맞는 기획자를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지방자체단체별로 마이스 산업을 간판으로 내걸고 있지만 정작 전문가 육성에는 뒷전"이라며 "오히려 전문인력을 홀대하다보니 업계를 이탈하는 사람들이 부지지수"라고 했다.
사실 우리나라 마이스 산업은 정부 입찰로 진행되는 비중이 60~70%에 달한다. 그만큼 정부 입김이 강한 분야다. 행사를 대행하는 업체들은 자연스럽게 정부에 의존하는 수익구조를 가지게 되고, 행사대행에 익숙해지다보니 기획력이 약화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윤 교수는 "기획력이 취약해진 대행사는 '갑질'에 시달리고, 이에 거부감을 느끼는 청년층들이 취업을 기피하게 되면서 전문인력 육성이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마이스 산업이 지속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부가가치 창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관급 행사는 지역활성화 등 파급효과가 있기에 지금까지 유지됐지만 이제는 기획하고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우선 기획 인재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마이스 산업은 네트워킹 산업이다"면서 "그런데 컨벤션뷰로와 같은 전문인력들이 공기업으로 흡수되면서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기업은 순환보직이 기본이다보니 주기적으로 담당자가 바뀐다. 윤 교수는 "인맥이 곧 경쟁력인 컨벤션뷰로들이 수년간 다져놓은 인맥을 그대로 날려버리는 꼴"이라고 한탄했다.
현재 마이스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이탈한 인재들을 메우지 못해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윤 교수는 "행사대행 역할에서 벗어나 행사를 기획하고 유치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유능한 인재들이 모인다"면서 "마이스 비즈니스는 구성원 하나하나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