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 여행노트] '소매치기' 걱정, 일단 접어두자

[이상홍의 남미여행기③] 친절한 그들
마이스투데이 2024-08-05 08:15:03

남미는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서구의 침략으로 시작된 역사의 흔적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한달 가까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등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20편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태고의 자연경관, 역사, 그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가는대로 담았다. 남미를 다녀온 분들에게는 추억 돌아보기로, 여행을 계획중인 분에게는 사전정보로, 남미라는 외딴동네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셀라론 계단의 관광객들 (사진=이상홍)

<2편 [꽃중년 여행노트]볼거리 넘치는 리우...치안이 아쉽다>에서 이어집니다.


남미여행에서 브라질 특히 리우에서 관광객들이 생각하는 가장 문제가 '치안'이고,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이 '소매치기'라고 했다. 수년전 코파카타나 해안에서 아침 산책 중 권총강도를 만난 지인 이야기까지 전해들으니 주변에서 누가 스치기만 해도 움츠려들고 눈만 마주쳐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 내가 만난 브라질 사람들

리우에서 둘째날 아침,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이파네마 해변이 보이는 호텔 조식 뷔페식당은 참 멋졌다. 비바람에 파도가 몰아치는 광경을 식당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며 즐기기에 나쁘지 않았다.

어제 아침에 얼굴을 익힌 식당 직원이 우리를 반겼다. 전형적인 흑인 남자다. 아마도 16~17세기 삼각무역을 위해 포르투갈이 아프리카에서 실어온 흑인의 후손이겠지 싶다. 당시 포르투갈은 유럽에 수출해서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설탕 무역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운영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을 대거 싣고 와서 노예로 부려먹었다. 

그런데 이 남자,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친근감이 간다. 이름을 물어보니 '파울로(Paulo)'라고 했다. 그는 아는 한국말을 열심히 써가며 우리를 도우려고 애썼다. 함께 사진도 찍었다. 대가없는 친절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셀라론 계단에 갔을 때다. 사진을 찍을 데가 한 두 곳이 아니었다. 특별한 멋진 타일 그림이 있는 곳을 골라서 줄을 섰다. 차례가 되어 아내와 셀카를 찍으려는데 촬영을 마친 브라질 젊은 커플이 찍어주겠다고 한다. 까무잡잡하고 허리굵은 여자와 키 작고 목 짧은 브라질 커플이었다.

얼떨결에 우리는 그들에게 휴대폰을 맡겼다. 리우에서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아차 싶었지만 늦었다. 여러 포즈를 시키며 사진을 찍는 동안 웃지만 초긴장 상태였다. 촬영 후 난간이 미끄럽다고 커플 여자가 아내 손까지 챙겨준다. 휴대폰 돌려받아 안심한 나는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니, 브라질 다른 지방에서 온 부부였다. 겉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했지만 속으로는 의심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호텔 뷔페식당의 친절한 직원 '파울로' (사진=이상홍)

흉물스런 외관과 달리 화려한 스테인드글래스가 시선을 사로잡는 코스모폴리탄 대성당에서 겪은 일도 있다. 버스를 타고 성당을 출발한지 3분 정도 지났을 때 일행 중 한 분이 휴대폰을 성당에 두고 왔단다. 골목길을 돌고 돌아 버스는 다시 성당에 도착했다. 휴대폰을 흘린지 대략 15분정도 지났다. 누가 집어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모두들 긴장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 후 손에 휴대폰을 든 일행이 뛰어온다. 우리는 박수로 환호했다.

코르코바두산을 오르는 경로는 쉽지 않다. 버스가 산꼭대기 주차장까지 갈만큼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중간에 밴으로 갈아타고 좁은 산길을 올랐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다시 관광용 미니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미니버스를 기다리며 긴 줄을 서 있는데 어디선가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소리가 들렸다. 길옆에 음료수와 스낵을 파는 가게의 점원인데 한국인만 보면 웃으며 손뼉을 쳤다. 상술이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다. 

리우에 도착한지 이틀동안 브라질 사람들을 이렇게 겪다보니 내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사람사는 데는 어디든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열심히 사는 건전한 사람들이고, 아주 일부가 문제를 일으킨다.

◇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지만...

현지 가이드로부터 브라질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브라질 역사, 문화, 환경,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브라질 서민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역사가 길지 않은 브라질은 유럽 백인, 원주민, 아프리카 흑인이 혼합된 다인종국가다. 남미에서 유일하게 스페인이 아닌 포르투갈 식민지를 거쳤다. 브라질의 독립은 다른 남미국가들과 조금 다르다. 다른 남미 국가들은 대부분 남미 출생의 백인인 크레요들이 주도한 투쟁을 거쳐 독립을 쟁취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포르투갈 왕실이 세운 나라다. 나폴레옹이 포르투갈을 쳐들어왔을 때 겁을 먹은 포르투갈 왕가는 아예 식민지인 브라질로 천도했다. 리우가 포르투갈의 수도 역할을 한 것이다. 이후 왕궁은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갔지만 황태자는 귀환하지 않고 리우에 남았다가 브라질 독립을 이끌었고 독립 후 그대로 브라질 초대 황제가 되었다. 결국 페드루 1세 중심의 왕실과 귀족들이 브라질 지배층을 이룬 것이다.

▲리우 해안 거대한 바위에서 하루종일 보내도 걱정없는 브라질 소년들 (사진=이상홍)

브라질은 한국의 84배나 되는 국토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석유와 어류, 광물을 포함한 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3~4모작도 가능한 비옥한 토양에 열대과일, 작물이 풍부하다보니 먹거리 걱정이 별로 없는 나라다. 하지만 인구의 1%에 해당하는 300만여명의 전통적 부호들이 자산 대부분을 차지하다보니 근원적 빈부격차가 심하다.

그래도 더 잘 살겠다고 아둥바둥하지 않는다. 겨울에도 영상 20℃로 반바지 하나만 걸치고 해변에서 삼바 추고 공 차고 놀다가, 먹거리는 대충 해결하고, 응원 축구팀 승리에 열광하는 걸로 충분히 행복해 하는 듯하다. 갑부들은 리우 등 대도시 인근에 살지만 빈약한 교통인프라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모두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기 때문이다. 

엄청난 자원을 가진 브라질이라는 나라의 가능성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다. 어쨌거나 호떡 뒤집듯 생각이 바뀌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던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생각을 바꾸는 것도 여행의 또다른 묘미다. 휴대폰을 매달아 놓은 목줄을 이제 떼어내도 될 듯했다. 치안에 대한 걱정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심정적으로 그러고 싶어졌다.


글/ 이상홍
(현)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여행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숲 해설가
(전)정보통신기확평가원 원장/  KT파워텔 대표/  KT 종합기술원 부원장/  KT 중앙연구소장
 저서=까미노, 꽃중년이 걸은 꽃길, 꽃의 향기 소통의 향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