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 여행노트] '파라과이 고난의 역사'에 마음을 빼앗기다

[이상홍의 남미여행기⑦] 3국 접경지역에서
마이스투데이 2024-09-02 07:59:03

남미는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서구의 침략으로 시작된 역사의 흔적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한달 가까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등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20편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태고의 자연경관, 역사, 그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가는대로 담았다. 남미를 다녀온 분들에게는 추억 돌아보기로, 여행을 계획중인 분에게는 사전정보로, 남미라는 외딴동네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경계지역에 세워둔 국가별 랜드마크(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순) (사진=이상홍)

<6편 [꽃중년 여행노트] '슈하스코' 즐기고 '탱고'에 취하다>에서 이어집니다.


남미여행 6일차 아침, 우리는 다시 브라질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동했다. 이과수 폭포 근처에는 두 개의 공항이 있는데 4일차에 도착한 공항은 브라질 이과수 공항(IGU)이고, 이날 우리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날 공항은 아르헨티나 이과수 공항(IGR)이다. 한 지역에 공항이 두곳이나 있는 것은 이과수 폭포를 찾는 관광객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은 이과수 강으로 나뉜다. 우리는 국경을 넘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브라질 출입국관리소에서 출국과 세관심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탔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이과수 강 위에 놓인 탄크레두 네베스 다리를 건너 아르헨티나로 들어섰다. 녹색과 노란색이던 다리 난간의 색깔이 아르헨티나로 넘어오면서 하늘색과 흰색으로 바뀌었다. 다리를 건너 아르헨티나 출입국 관리소를 빠져나오면 푸에르토 이과수 지역이다. 

◇ 3국 경계지역에 가보니...

우리는 공항에 도착하기전, 푸에르토 이과수(Puerto Iguazu) 지역의 '3국 접경지역'에 들렀다. 좀전에 넘어왔던 이과수 강이 파라나 강과 합류하는 지점이 한눈에 보였다. 두 강이 만나는 이 지점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3국'의 경계가 정해지는 특별한 지역이다. 이곳 바로 앞 이과수 강 건너편이 브라질로 '포즈 두 이구아수'(Poz do Iguaçu)이고, 좌측 파라나 강 건너편이 파라과이 국경도시인 '사우다드 델 에스테'(Cd. del Este)이다.

3국 모두 국경지역에 공원 또는 관광지를 개발해 자국을 홍보하고 있다. 자국을 나타내는 상징물을 설치하고 큼직한 국기를 경쟁적으로 높이 달아 강 건너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도록 해뒀다.

▲파라나 강과 이과수 강으로 나눠지는 3국 경계지점 

내가 서 있는 아르헨티나 푸에르토 이과수에는 3국 접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망공원(Hito Tres Fronteras)이 조성돼 있다. 아르헨티나 국기 색깔인 하늘색과 흰색으로 된 큼직한 상징탑이 공원 가운데 서 있고, 기념품 가게도 보인다. 입구에는 인증샷을 찍을 수 있게 이과수 사인보드도 설치돼 있었다. 강가에 서 있으니, 이과수 강 앞쪽 건너편에 노란색과 초록색의 브라질 상징물이, 좌측 파라나 강 건너편에는 빨간색, 흰색, 파란색의 3단 파라과이 조형물이 보였다. 강 아래쪽에는 두 강의 접점지역과 3개국 국경을 둘러보는 보트투어 상품도 있다.

브라질은 국경지역에 대형 관람차 등 레저시설까지 갖춘 유료관광지(Marco das Tres Fronteiras)를 조성했다. 분수 한가운데 3국 랜드마크를 설치하고 저녁마다 화려한 분수조명쇼와 삼바댄스 공연을 펼친다. 앞쪽 파라나 강에는 브라질과 파라과이를 연결하는 사장교 형태인 통합의 다리(Ponte da Integração)가 놓여있다. 두 나라의 물류와 관광을 위해 최근에 건설된 듯했다. 야간에 다리 위 2개의 주탑에서 부채처럼 펼쳐진 케이블에 화려한 조명이 켜지면 대관람차와 함께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파라과이와 브라질의 교역을 위해 최근에 건설된 '통합의 다리' (사진=이상홍)

이과수 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국경인 이과수 강의 하류로 파라나 강과 합류 이전에 있다. 19세기 중반까지는 이과수 폭포가 있는 이 지역 전체가 파라과이가 지배하는 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연으로 파라과이는 이 황금같은 관광자원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게 다 빼앗겼을까? 이과수 폭포를 빼앗긴 비운의 나라, 남미에 있지만 5국에도 끼지 못하는 파라과이의 역사와 파라과이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주변국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파라과이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 남미의 심장이자 과라니족의 나라 '파라과이'

파라과이는 남미 한가운데 위치한 탓에 '남미의 심장'으로 불린다. 인종 대부분은 원주민인 과라니족과 백인의 혼혈인 메조티조로 구성돼 있다. 유럽에서 온 백인(페닌슐라)이나 현지 출생 백인(크레올)의 비율이 높지 않은 편이다. 스페인 식민지를 거치며 스페인어권이긴 하지만 원주민 언어인 과라니어를 스페인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는 남미의 유일한 나라다. 

포르투갈 식민지배 지역과 스페인 식민지배 지역의 경계이기도 했다. 두 세력의 완충지대여서 식민세력의 학살을 피해 모인 원주민인 과라니족들이 어느 정도 자치권을 행사하던 지역이었다. 덕분에 남미의 다른 식민지들이 독립하던 시기인 1811년 큰 어려움 없이 '파라과이'로 독립할 수 있었다.

파라과이는 독재자이긴 하지만 민족주의자인 프란시아 그리고 로페스와 그의 아들 솔리노 로페스로 이어지면서 주변국이 부러워할 정도로 경제성장을 이뤘다. 혼혈을 강조하고 원주민들을 챙기는 정책으로 정치적으로도 안정된 국가로 성장했다. 내륙 국가로서의 한계를 지녔으나 일찍부터 철도를 깔고 광업, 무기산업 등을 발전시켰다. 주변의 농업국가와는 다른 행보로 나름 산업강국으로 성공적으로 발전했다. 부자 위주의 고등교육보다 아동들의 초등 교육을 의무화해 문맹률을 낮추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통합도 이뤄냈다.

그러다보니 주변국의 견제가 없을 수 없다. 서쪽에 접한 볼리비아와는 석유 문제로 차코지역을 두고 다투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대서양에접하고 있는 강국인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끊임없는 영토 분쟁을 했다. 파라과이는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럽에서 무기를 수입해와 현대화된 군대를 양성하며 군사대국이 된다.

내륙국에서 벗어나려는 파라과이 노력은 주변국의 견제로 쉽지 않았다. 우루과이 내전을 둘러싼 브라질, 아르헨티나와의 의견 대립은 결국 1865년 전쟁으로 이어진다. 파라과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삼국동맹군과 대적해야 했다. 삼국동맹전쟁 또는 파라과이 전쟁이라고 부른다. 초기에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승리하지만 전쟁이 6년간 지속되면서 모든 것을 잃고 만다. 3개국의 인구를 합치면 파라과이 인구의 25배였다.

전쟁에서 패하면서 파라과이는 이과수 폭포를 포함해 영토의 3분의 1을 빼앗겼다. 단일민족으로 애국심을 앞세워 어린이까지 포함한 전 국민이 결사항쟁을 했지만 결과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낳았다. 돈에 팔려온 브라질 흑인 용병들의 잔인함이 더해진 탓이다. 이 전쟁으로 파라과이는 성인 남성의 90%가 사망했다. 남자 2만8000명이 살아남았는데 남녀의 성비가 1대4였다고 한다. 2000명의 어린이가 막대기를 총인양 들고 전투에 참가하면서 모두 몰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날이 8월 16일이다. 파라과이는 이날을 어린이날로 정해서 추모한다.

▲전쟁 후 파라과이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동맹국에게 영토를 빼앗겼다.

◇ 파라과이, 고난 속에 다시 피는 꽃

끔찍한 전쟁을 겪었지만 머리가 뛰어나고 언어능력, 셈이 밝은 파라과이 사람들은 단일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길을 찾는다. 계몽주의 독재자 프린시아 박사가 남긴 교육정책이 결국 큰 힘이 됐다.

파라과이는 이과수 지역에 아르헨티나의 푸에르토 이과수(IGR), 브라질의 포즈 두 이과수 (IGU) 수준은 아니지만 '시우다드 델 에스테'라는 상업도시를 건설했다. 이 지역에서 면세 정책으로 주변국의 보따리 상인과 소비자를 모은다. 품질이 우수한 제품보다 저렴한 제품, 가성비 높은 전자제품으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서민들의 주머니를 공략했다. 브라질은 당일 여행이면 출입국 절차를 면제해주기 때문에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파라과이는 브라질과 협력해서 파라나 강에서 세계 최대의 이타이푸 수력발전소를 건설했다. 쓰고 남는 전력 85%를 팔아 외화를 벌어들인다. 브라질 접경지역에 사람과 물류가 쉽게 오갈 수 있도록 우정의 다리(Puente Internacional de la Amistad)도 만들었다. 파라나강에 연결된 항구를 파라과이가 사용하도록 인정받고 생산한 농산품, 공산품의 수출 창구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넘쳐나는 물류를 소화하고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하기 위해 파라나강 위에 두번째 다리인 통합의 다리(Ponte da Integração)도 건설했다.

유럽의 이민을 받고, 주변국에서도 역내 이민 통해 부족한 남성 그리고 노동력을 채워 이제 전쟁전 수준으로 인구를 회복했다고 한다. 파라과이가 주변 강국 사이에서 자신의 강점을 키우고, 적절히 협력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대단하다. 

내가 여행할 남미 5개국에 파라과이는 빠져있어 그들이 사는 현장은 직접 볼 수 없다. 하지만 푸에르토 이과수 지역 국경공원에서 멀리 파라나강 건너에 보이는 건물 앞에 펄럭이는 파라과이 국기와 빨강, 하양, 파랑으로 만든 상징탑에서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읽는다. 

▲파라과이 국경 시설에 보이는 국기와 조형물 (사진=이상홍)

최근 파라과이 경제에 도움이 될 희소식이 들린다. 이타이푸 수력발전소에서 생산되고 남는 전력의 새로운 활용 가능성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AI기술을 기반으로 한 챗GPT, 그리고 생성형 AI라는 솔루션이 나오며 예전에 이세돌과의 바둑 시합에서 맛보기로 보여준 AI 기술의 가능성이 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AI의 가공할 파워나 능력은 막대한 전력 소모가 필요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고민의 답을 수력이라는 친환경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이타이푸 발전소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발전소 근처에 대규모 IDC센터를 건설해 AI 기술 개발에 필요한 전력을 효율적으로 공급하자는 아이디어다. 이를 위해 IT 기술력이 뛰어난 한국과 파라과이와과의 협력이 모색되고 있다는 고무적인 소식도 들린다. 


글/ 이상홍
(현)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여행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숲 해설가
(전)정보통신기확평가원 원장/  KT파워텔 대표/  KT 종합기술원 부원장/  KT 중앙연구소장
 저서=까미노, 꽃중년이 걸은 꽃길, 꽃의 향기 소통의 향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