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 여행노트] 브라질의 국조 '투칸' 야생에서 만났다

[이상홍의 남미여행기⑤] 브라질의 야생동물들
마이스투데이 2024-08-19 08:00:03

남미는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서구의 침략으로 시작된 역사의 흔적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한달 가까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등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20편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태고의 자연경관, 역사, 그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가는대로 담았다. 남미를 다녀온 분들에게는 추억 돌아보기로, 여행을 계획중인 분에게는 사전정보로, 남미라는 외딴동네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브라질의 국조인 왕부리새 '투칸'

<4편 [꽃중년 여행노트] 웅장한 '이과수 폭포' 속살까지 드러내다>에서 이어집니다.


남미라는 지역은 지금까지 여행을 다녔던 유럽이나 북미 또는 동남아 지역과 사뭇 다른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 지역에 서식하는 동식물 생태계 또한 색다르다. 남미여행 첫 국가인 브라질에서도 다른 지역에서 전혀 보지 못한 신기한 동물들을 도처에서 만났다. 여행길에 다양한 동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태를 알아보는 일도 여행하는 즐거움 중에 하나다. 재미있는 것은 이 동물들 대부분은 사람들과 격리돼 있는 공간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 브라질 사구이 원숭이(Brazilian Sagui Monkey)

첫날 들른 리우식물원은 '아마존의 축소판'이라고들 하는데 밀림이라는 인상보다는 잘 가꿔진 공원같이 느껴졌다. 8000여종의 나무를 포함해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이 식물원은 원래 포르투갈 왕실 정원으로 만들어졌다. 식물원 한 가운데 높이가 30m에 이르는 제왕 야자수가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가로수길이 너무 멋졌다.

공원 인구를 지나는 대나무 숲에서 몸보다 꼬리가 훨씬 긴 원숭이 무리를 만났다. 긴 꼬리의 얼룩도 멋스럽지만 조그만 얼굴 귀쪽에 길게 뻗은 하얀 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대나무에 매달려 있는 어미 원숭이 등에는 새끼 원숭이가 매달려 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사구이 원숭이'라고도 하고 '비단원숭이'라고도 했다.

사구이 원숭이들은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듯 보였다. 아마도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일이나 음식을 기대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야생으로 살아가는 원숭이들인지 식물원에서 키우는 원숭이들인지 알 수 없었다. 예수상이 있는 코르코두바산에서도 원숭이들을 만났다.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두 발로 서서 관광객을 쳐다보는 모습이 신기하다기보다 애처로워 보였다.

▲리우식물원에서 만난 '사구이 원숭이' (사진=이상홍)

◇ 코아티(Coati)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를 둘러보기 위해 산책길을 걷다가 바로 옆 울타리를 기어다니는 '코아티'를 만났다. 브라질 이과수쪽 길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긴 얼룩 줄무늬의 꼬리를 가져 '긴꼬리 너구리', 또는 길게 튀어나온 입과 코를 보고 '긴코 너구리'라고도 한다. 

국립공원 안내문에는 '애완동물이 아니니 만지거나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손을 내밀다가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에 물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버려진 음식을 찾는데 사람이 들고 다니는 비닐주머니의 음식을 채가기도 한다.

▲이과수 폭포 산책길에서 만난 '코아티' (사진=이상홍)

◇ 카피바라(Capybara)

모터보트를 타고 이과수 폭포의 속살을 보기 위해 이과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과수 강 유역이 폭포나 밀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폭포가 있는 절벽으로 가기전 강가에 배를 댈 수 있을 만큼 평평한 평지가 있고, 그 뒤로는 밀림 앞쪽에 돌산이 보였다. 강가를 유심히 보니 넓은 평지에 천천히 움직이는 동물 무리가 보였다.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마치 돼지처럼 보였다. 달리는 보트에 흔들이는 자세로 방수팩에 싼 휴대폰을 꺼내 바쁘게 찍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 동물은 '카피바라'였다. 남미지역에 서식하는 카피바라는 주로 따뜻한 물가에 무리지어 살고 있다. 설치동물 가운데 가장 큰 동물이라고 한다. 설치동물이면 쥐 종류인데 쥐보다는 훨씬 컸다. 내 눈에는 뒷모습이 돼지처럼 보였다. 몸무게가 40~60kg까지 자란다고 하니 쥐로 보기 쉽지 않다.

실제로 몸통은 돼지 모양이고, 입은 뭉툭한 게 하마를 닮았지만 얼굴 모양에서 설치류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물을 좋아해서 물갈퀴를 달고 물속을 다녀 '워터피그'라는 별명도 붙었다. 덩치만 크지 온순한 동물이라고 한다. 사람이 탄 모터보트가 지나가도 강가에 무리지어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니 사나운 동물은 아닌 듯했다.

▲이과수 강가에서 만난 '카피바라' (사진=이상홍)

◇ 88나비(88 butterfly)

속옷까지 흠뻑 젖은 모터보트 투어를 마치고 마쿠코 사파리 정문 근처에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눈앞에 무언가가 팔랑거린다는 생각이 들어 유심히 보니 나비였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몇 마리가 바닥에 사뿐히 앉았다. 무늬가 참 예뻤다. 

휴대폰으로 촬영한 다음에 자세히 살펴보니 날개에 새겨진 무늬에서 숫자가 보였다. 날개 위쪽 가장자리에 붉은색 무늬가 보인다. 날개 전체에 3개 정도의 검은색 동심원이 그려져 있는데 한 가운데 '88'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중남미의 습기가 많은 산림에 서식하는 나비라고 한다. 

▲날개에 88 숫자가 선명한 나비 (사진=이상홍)

◇ 투칸(Toco Toucan)

이과수국립공원 곳곳에 그려진 노란색 또는 주황색의 큼직한 부리를 가진 새가 바로 '투칸'(Toco Toucan)이다. 이 매력적인 왕부리새는 브라질의 국조다. 국립공원을 오가며 혹시 만날 수 있으려나 했는데 가이드 이야기로는 공원 내에 있기는 하지만 야생에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근데 운좋게 야생의 투칸을 만났다. 아르헨티나 이과수국립공원 투어를 마치고 트램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바깥 창가에 있는 키큰 나무 끝에 부리가 큼직한 새가 보였다. 후다닥 휴대폰을 꺼내는 사이에 투칸은 이미 날아가버렸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야생에서 투칸을 직접 봤다는 게 어딘가! 브라질 사람들도 새 동물원이나 가야 투칸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데 어쩌다 들른 브라질에서 야생 투칸을 직접 봤다는 생각이 들자, 앞으로 남미여정에서 무엇을 겪게 될지 마냥 설랬다.


글/ 이상홍
(현)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여행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숲 해설가
(전)정보통신기확평가원 원장/  KT파워텔 대표/  KT 종합기술원 부원장/  KT 중앙연구소장
 저서=까미노, 꽃중년이 걸은 꽃길, 꽃의 향기 소통의 향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