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컨벤션뷰로(상)] '마이스 도시' 표방하는 지자체들...전문조직은 줄줄이 해체

경쟁력 높은 고양과 대구 컨벤션뷰로 '해체직전'
지자체장 의해 '좌지우지'..."경제효과 따져봐야"
김나윤 기자 2024-04-05 08:30:03

"잘 안되는 곳이면 말을 안해요. 크기는 작지만 직원 하나하나가 외교관급 역량을 뽐내며 대형 국제회의도 척척 유치하는 컨벤션뷰로인데...잘하던 행사들 하루아침에 그만두래요."

취재진과 만난 한 지역컨벤션뷰로 관계자의 말이다. 열정이 넘치고 자신의 직업과 직장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한순간에 '애정하던'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설움이 북받쳐 이같이 토로했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마이스(MICE) 중심도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형 컨벤션센터가 있는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컨벤션센터가 없는 지역에서도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이스 산업 활성화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들은 지역발전의 한축을 담당하면서 '도시마케팅'의 핵심업무를 담당해오던 컨벤션뷰로 조직을 축소하거나 없애고 있어 '마이스 중심도시'라는 캐치플레이스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킨텍스가 위치하고 있는 고양시는 글로벌 마이스산업 중심도시를 표방하고 있지만 '고양컨벤션뷰로' 조직을 해산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고양컨벤션뷰로는 고양시꽃박람회재단 등과의 통합 여부를 놓고 논의 중에 있다. 만약 농업기술센터 소관인 꽃박람회재단과 통합될 경우, 마이스 전문조직을 농업기관과 합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까지 멀쩡하게 진행했던 고양 데스티네이션 위크, 콘텐츠 유니버스코리아, 중장년 마이스인력 육성 등의 지역행사가 지난해 12월 조직통합이 거론된 이후부터 거의 '올스톱' 상태다. 고양컨벤션뷰로 인력의 상당수가 빠져나가면서 이를 담당할 사람이 없는 탓이다. 고양컨벤션뷰로는 글로벌 데스티네이션(GDSI) 지속가능성 지표에서 아시아·태평양 1위, 전세계 14위를 기록하며 국내 도시마케팅조직(DMO) 가운데서도 가장 경쟁력이 높은 조직으로 평가받던 곳이다. 

대구컨벤션뷰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대구컨벤션뷰로는 엑스코(EXCO)와 통합이 논의되고 있다. 컨벤션센터인 엑스코는 센터 마케팅을 담당하고, 컨벤션뷰로는 도시마케팅을 전담한다. 그런데 엑스코가 컨벤션뷰로 조직을 흡수하게 되면 그 기능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두 기관의 역할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통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대구컨벤션뷰로 역시 국내 뷰로 가운데 경쟁력이 높은 곳으로 평가받았다. 지난 20년동안 세계가스총회, 세계물포럼, 세계뇌신경과학회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자체 역량으로 유치했고, 지금까지 치룬 행사만 꼽아도 733건이 넘는다. 이 덕분에 대구지역은 연간 1000억원에 이르는 경제효과를 누렸다고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전시컨벤션 사업에 대한 지원이 대폭 줄어들었고, 조직도 축소되고 있다.

윤유식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교수는 "연구결과, 마이스 전문조직의 유무에 따라 지역 방문자수가 20~30배 정도 차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지역의 마이스 전담인력을 없애면 그 지역의 행사개최 건수가 줄면서 방문객수도 절반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고양과 대구뿐 아니라 국내 거의 모든 지역 컨벤션뷰로들이 조직이 흡수되거나 해체되고 있다. 광주 컨벤션뷰로 조직은 이미 광주관광공사로 흡수됐고, 제주 컨벤션뷰로 조직도 제주관광공사로 통합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마이스업계 한 관계자는 "대구와 고양마저 컨벤션뷰로 조직이 사라지면 국내에서 사단법인 형태로 남아있는 컨벤션뷰로 조직은 단 1곳도 남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컨벤션뷰로(CVB: Convention & Visitors Bureau)는 국제회의 산업육성 법률에 따라 지자체 차원에서 설립한 국제회의 유치·지원을 전담하는 조직이다. 마이스 행사 유치부터 도시마케팅, 도시정보 제공 등의 서비스까지 컨벤션뷰로에서 담당한다. 쉽게 말해 '행사 개최지'로서의 도시를 홍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각 지자체는 도시를 홍보하는 역할을 전담하는 조직을 없애고 있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마이스산업의 경쟁력은 인맥이 100%를 좌우한다"면서 "1명의 마이스 전문인력이 수년동안 국제무대에서 다진 인맥을 기반으로 해당 지역에 행사를 유치하는데 그런 전문인력들을 없애버리고 무슨 글로벌 마이스 중심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는 마이스에 대한 지자체장들의 인식부족에서 비롯됐다는 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지역 컨벤션센터들이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컨벤션센터는 공공기관이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한 조직으로 '하드웨어' 역할을 담당한다. 반면 컨벤션뷰로는 컨벤션센터에 담을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유치하는 '소프트웨어' 역할을 맡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컨벤션뷰로를 별도의 사단법인으로 설립했던 것이다.

그런데 조직통합 과정에서 사단법인 설립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단법인과 재단법인은 통폐합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보니 사단법인을 해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 과정에서 사단법인 근무자들의 고용승계가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단법인 컨벤션뷰로에서 근무하던 대부분의 직원들이 퇴사했거나 이직했다.

컨벤션뷰로 종사자들은 외교관 수준의 역량을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의 후보지들과 경쟁해 국제행사를 유치해오는 것이 뷰로의 역할인데, 외국어 실력은 물론 인맥과 협상력, 설득력을 두루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별도의 성과급도 보상도 없이 공무원 월급만으로 대형 국제행사들을 입찰해오는 셈이다. 가령 인지도 낮은 작은 신도시에 불과했던 고양시를 지속가능한 글로벌 마이스 도시로 알린 것도 고양컨벤션뷰로였다. 

결국 지역방문자수를 결정하는 것이 컨벤션뷰로에 달렸다는 것이다. 가령 '2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을 추천해달라'는 요구사항을 컨벤션센터에서는 맡을 수가 없지만 컨벤션뷰로는 이 요구를 해결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컨벤션뷰로는 지역마케팅의 중요한 기구가 된다"면서 "지역의 전반적인 행정업무를 총괄해야 하는 지자체는 마이스 업무 하나만 보고 움직이기 힘들기 때문에 마이스 전담조직을 뒀던 것"이라고 했다. 이 마이스 전담조직이 바로 컨벤션뷰로였던 것이다.

윤영혜 동덕여대 글로벌MICE학과 교수는 "컨벤션뷰로는 지자체장의 인식에 따라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구조여서는 안된다"면서 "라스베이거스 등 국제행사가 열리는 도시에서 컨벤션뷰로 조직을 별도로 두고 있는 이유가 그만큼 글로벌 인맥을 보유하면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별도 조직으로 있던 컨벤션뷰로의 소멸은 글로벌 마이스 시장에서 한국을 퇴보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