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 여행노트] '색다른 맛'...남미의 특별한 먹거리들
2025-01-20
남미는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서구의 침략으로 시작된 역사의 흔적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한달 가까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등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20편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태고의 자연경관, 역사, 그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가는대로 담았다. 남미를 다녀온 분들에게는 추억 돌아보기로, 여행을 계획중인 분에게는 사전정보로, 남미라는 외딴동네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8편 [꽃중년 여행노트] '아! 아르헨티나'...남미의 부국이 어쩌다?>에서 이어집니다.
남미여행 7일차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4시간을 날아 우수아이아 공항에 도착했다. 4시간 전만 해도 반팔을 입고 시내를 활보했는데 패딩을 챙겨입어야 할 정도로 날씨가 추웠다. 오후 2시쯤 공항을 빠져 나오는데 잔뜩 흐린 날씨였다. 멀리 보이는 구름 낀 산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있었다. 우수아이어 공항의 깎아내리는 듯한 파란색 지붕 경사가 겨울에 얼마나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인지 짐작하게 해줬다.
원래 오후에 비글해협에서 배를 타는 일정이었으나 날씨를 고려해 다음날 가기로 했던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 국립공원을 먼저 방문하기로 했다.
◇ 감옥은 이제 관광자원이 되다
목조건물인 공원매표소를 들어서니 만국기가 걸려 있는데 가장 앞줄에 걸린 태극기가 눈에 들어와 반가웠다. 아마도 한류의 영향이고 한국인이 그만큼 많이 온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노란색 바탕에 굵직한 파란 줄무늬가 그려진 옷을 아래위로 입은 사람들이 오가며 사진을 찍자고 호객한다.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 땅에는 원주민들이 살았다. 그들은 이 춥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항상 불을 피우고 연기를 내며 살았다. 그래서 붙은 지명이 '불(fuego)의 땅(tierra)'이다.
우수아이아는 원래 소수의 원주민과 기독교 전파를 위해 이곳에 머문 선교사들만 거주하는 황량한 날씨의 버려진 땅이었다. 남미대륙 최남단이라는 지리적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아르헨티나 정부는 우수아이아 지역 개발의 필요성을 인지했다. 1902년, 개발에 필요한 인력으로 죄수를 모았고, 그들을 수용할 시설도 만들었다.
이들은 도시 개발에 필요한 목재를 12km 떨어진 티에라 델 푸에고 산에서 벌목을 통해 조달했다. 벌목한 목재를 나를 운송 수단인 철도를 가설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었다. 죄수들은 수천명이 됐고 이들을 관리한 인력도 200명이 넘었다고 한다. 험한 지형과 추운 기후로 탈출이 불가능해 범죄자 수감에도 적당한 지역이었을 것이다.
대합실에서 나무도끼를 들고 호객 하는 사람들이 입은 옷이 그 당시 죄수복이다. 감옥은 1948년 폐쇄됐고 지금은 그 감옥 공간, 일터, 철도 시설들이 관광자원이 됐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주변의 아름다운 호수와 보호할 자연환경을 묶어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이 지역의 어두운 과거였던 죄수들의 복장은 이제 이 지역을 홍보하는 멋진 상징물로 변신했다. 매표소 내부 벽에는 감옥으로 사용할 당시의 시설, 기차, 감옥 등의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 세상 끝 열차와 세상 끝 우체국
'세상 끝 열차(El Tren del Fin del Mundo) 25주년'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죄수들이 벌목한 목재를 나르던 철도 위로 관광용 열차가 운행된지 25년이 됐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녹색 기차를 타고 50여분간 국립공원 내 숲과 그들의 거주 공간, 습지, 냇가, 그루터기만 남은 벌목 현장 등을 돌아봤다.
죄수들이 깊은 산 속에서 벌목한 나무들을 쌓여둔 흔적도 보였다. 그들에겐 열악한 환경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고단한 삶의 현장이었을테지만, 지금은 천천히 달리는 관광열차 바깥으로 보이는 초원,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 숲의 풍경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햇살이 덜 드는 음지 숲 속 나무줄기에 녹색 이끼가 자란 모습이 살짝 신비스럽기도 하다. 습기가 있는 나무줄기에 기생하는 일종의 지의류인데 우스네아(usnea)라고 한다. 회녹색 실 또는 털이 늘어진 모양을 보고 할아버지 수염(Oldman’s Beard)이란 별칭이 더 널리 쓰인다. 오염된 대기에서 포함된 이산화황에 민감한 식물로 깨끗한 공기를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중간에 정차한 간이역에 내려서 숲 속에서 물길이 내려오는 마카레나 폭포를 돌아보는 짧은 산책이 가능하다. 언덕에 작은 오두막이 보이는데 아마도 예전에 죄수들이 살던 집일 듯 한데 벽과 지붕을 초록, 주황, 노랑 등으로 예쁘게 칠해 사진찍기에 적당했다. 열차 앞에 올라 인증사진도 한컷!
종점에서 내려 전용버스를 갈아타고 국립공원 여러 명소에 들렀다.
남쪽 바닷가로 내려가니 '땅 끝 우체국'이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토요일이라 바닷가에 붙어 있는 우체국 문은 닫혀있고, 입구에 둥근 통 모양의 노란색 우체통만 보였다. 평일에는 우체국 안에서 편지를 써 보내기도 하고 '땅 끝 우체국' 기념 스탬프를 찍기도 한다는 데 아쉽다.
가건물처럼 보이는 우체국 건물 옆에 철제로 된 다리를 가설해 최대한 바다 쪽으로 접근할 수 있게 했고, 그 끝에 아르헨티나 국기가 힘차게 펄럭이며 이 땅 끝이 아르헨티나 땅임을 과시하고 있었다.
◇ 국립공원 내의 호수와 숲길
국립공원 내에는 호수, 숲길, 바다 그리고 파란 하늘이 어우러지며 만드는 풍광이 너무 아름답다. 이 풍광을 여유있게 즐기며 산책하는 트래킹 코스가 많이 만들어져 있다. 트래킹을 하면 좋겠지만 그럴 여유는 없어 전용버스로 공원 내 명소를 골라다녔다.
바다가 호수처럼 보이는 전망 좋은 지역에 알라쿠시 여행자센터가 있다. 카페나 기념품 가게뿐 아니라 내부에 박물관이 있어 예전에 이 황량한 땅 끝 마을에 터를 잡고 불을 피우며 살던 원주민의 삶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이 공원의 서쪽 끝에는 라파타이아 베이, 아리아스 항이 있는데, 아르헨티나의 동쪽 여러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인 루타 3(Ruta No.3)의 종점이다. 여기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연결되는 도로인데 무려 3,079km이다. 남미에서 가장 긴 도로이자 가장 지루한 도로다. 이 도로를 계속 이어가면 도착하는 알라스카까지는 1만7848km가 된다고 한다. 거의 지구 반 바퀴나 되는 거리다.
'라고 아시가미'(Lago Acigami)라는 안내판이 붙은 넓은 빙하 호수는 마치 바다같다. 전망대에서 2개의 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호수를 즐긴다. 이런 멋진 호수가에 캠핑장, 낚시터 그리고 트래킹 코스가 없을 수 없다.
깨끗한 흰 구름이 받쳐주는 파란색 아니 하늘색 하늘을 보니 펄럭이는 아르헨티나 국기를 매달지 않아도 이 땅이 아르헨티나라는 걸 알 것 같다. 지도에는 로카 호수(Lago Roca)라고 나오는데 남반구 최남단 호수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비글해협이다. 이 호수 가운데로 칠레와의 국경선이 지나간다. 찬 기운이 느껴지는 바람은 부럽지 않은데 미세먼지, 황사같은 불순물이 하나 없는 하늘은 너무 부러웠다.
글/ 이상홍
(현)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여행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숲 해설가
(전)정보통신기확평가원 원장/ KT파워텔 대표/ KT 종합기술원 부원장/ KT 중앙연구소장
저서=까미노, 꽃중년이 걸은 꽃길, 꽃의 향기 소통의 향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