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관광두레 주민사업체 연계 '지역여행상품' 공모
2025-03-10
남미는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서구의 침략으로 시작된 역사의 흔적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한달 가까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등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20편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태고의 자연경관, 역사, 그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가는대로 담았다. 남미를 다녀온 분들에게는 추억 돌아보기로, 여행을 계획중인 분에게는 사전정보로, 남미라는 외딴동네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제28편 [꽃중년 여행노트] 파타고니아와 안데스에 사는 식물들>에서 이어집니다.
남미여행 마지막 이틀을 '리마'에서 보내기로 했다.
페루의 수도 리마는 옛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와는 완전히 다른 도시다. 태평양 연안도시로 고도가 120m 수준이다. 그래서 호르베 차베스 리마 공항에 내리자, 우선 숨쉬기가 편했다. 1주일동안 3500m 고산지방을 여행했던 탓인지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42만명의 작은 도시 쿠스코와 달리, 리마는 1000만 인구가 사는 대도시다. 우버를 타고 호텔로 가는 길에 눈에 들어오는 널직한 도로와 고층건물들이 내가 다른 곳에 왔음을 실감나게 해줬다.
◇구도심 '아르마스 광장'과 '산 마르틴 광장'
리마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구도심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이다. 우버를 타고 가는데 길이 너무 막혔다. 우버 기사의 눈치가 보여 우리는 익스포지션 광장에서 내렸다. 쿠스코에서는 어디든지 걸어서 편하게 갈수 있지만 리마는 달랐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한쪽에 내려 산 마르틴 광장을 거쳐 아르마스 광장을 찾아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마치 시골에 살던 촌놈이 서울역에 내려서 광화문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수시로 구글 지도를 확인하고, 또 어리바리한 우리를 표적삼아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지도 살피며 가야 했다.
놀며 쉬며 1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아르마스 광장은 남미 다른 도시의 아르마스 광장과는 달라 보였다. 우선 분수대와 녹지 정원으로 구성된 정사각형 광장이 크고 반듯했다. 따뜻한 기후에 어울리게 키 큰 야자수 나무가 광장 전체에 깔려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광장이라고 한다.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과 또다른 것은 여긴 광장 뒤쪽에 붉은 산이 보이지 않고 파란 하늘이 시원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2개의 종탑 타워를 양쪽에 둔 바로코 양식의 화려한 리마 대성당이 눈길을 끈다. 성당 지붕 장식과 첨탑 끝에는 까마귀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꼼짝하지 않고 있는 모습 때문에 마치 또다른 조형물 같다. 바로 옆에 리마 대주교궁이 붙어있다. 석제 건물 2층에 목재로 된 테라스가 붙어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광장 왼쪽 코너에 철제 팬스로 통제된 건물이 대통령궁을 포함한 정부 청사다. 낮 12시에 근위병들의 교대식이 열려 관광객이 몰린다 한다. 광장 주변에는 시청을 포함해 노란색 건물들이 많은데 이 건물들이 식민시대 지어진 건물들이다. 광장에 벤치들이 넉넉히 설치돼 있어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의 쉼터로 부족함이 없다. 광장 한 가운데는 큼직한 분수대가 있다.

쿠스코를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쿠스코를 동생들에게 맡기고, 1535년 수도로 정한 리마로 넘어온다. 말년에 모든 정성을 다해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이 도시를 건설했다. 분수대 한가운데 원래는 피사로의 동상이 있었지만 독립 후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철거됐다. 분수대 중앙에 입에서 물을 뿜는 동물의 조각이 재미있다. 사자 형상인데 그 아래 날개가 달린 퓨마가 깔려있다. 콘도르와 퓨마가 페루의 상징이니 그 위를 올라타고 있는 사자는 스페인이라는 의미인가 싶었다.
동상은 철거했지만 정복자 피사로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대통령궁은 피사로가 살던 곳으로 여기에서 알마그라 부하들에 의해 살해된다. 이 건물의 원래 이름이 카사 데 피사로(Casa de Pizarro)다. 그의 시신은 바로 옆 리마 대성당에 미이라로 안치돼 있다. 넓은 아르마스 광장은 식민 개척의 중심지로 시장, 투우장뿐아니라 반역자나 반항 세력의 처형 장소로 사용됐다. 현재는 마요르 광장(Plaza of Mayor)으로 명칭을 바꿨다.
오후 5시가 넘어 광장에 도착하는 바람에 대성당 내부를 둘러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벤치에 앉아 아름다운 광장을 둘러싼 식민지 건축물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광장 한쪽에 'LIMA'라는 싸인 보드가 있어, 이를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고 광장을 떠났다. 가로등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아르마스 광장과 산 마르틴 광장 사이를 잇는 유니온 거리(Jiron de la Union)는 전형적인 대도시의 쇼핑 거리였다.
차량 통제를 막아 인도로만 사용되는 이 거리는 시민과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그야말로 리마의 명동이었다. 유니온 거리 중간에 있는 라 메르세드 성당을 잠시 들러본 후 바로 산 마르틴 광장으로 향했다. 피사로의 동상은 철거됐지만 산 마르틴 광장에는 페루 독립의 영웅 산 마르틴의 기마 동상이 늠름하게 서 있다. 복잡한 대도시 리마의 구도심에서 우버를 불러 안전하게 호텔로 귀가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팔로미노 섬 크루즈와 무인도에서 만난 새들
리마에 도착한 다음날 우리는 아침 일찍 카야오(Callao)항으로 갔다. 팔로미노 섬으로 가는 크루즈 투어를 위해서다. 리마에서 태평양 연안에 있는 섬을 투어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리마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지인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 유적지를 찾고 멋진 자연 경관을 즐기던 지금까지의 여행과는 많이 달랐다.
집합 장소로 가보니 해안으로 긴 성벽이 이어진 거대한 성채가 눈에 들어왔다. 페루 국기 아래 레알 펠리페 요새(Fortaleza del Real Felipe)라는 긴 이름이 붙어있다. 가까이 가보니 입구 초소에는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 해적들의 리마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요새라고 한다.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걸로 보아 지금은 군부대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이드 투어를 통해 요새내 공원, 포대 등의 관람이 가능하다.

크루즈 보트는 4열로 30여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의자가 전부고, 위는 완전 오픈돼 있었다. 태평양 해안의 3월 햇살은 생각보다 훨씬 강렬했다. 자외선 차단 선크림과 모자, 선글래스를 꼭 챙기라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페루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빈 자리없이 다 채웠다. 가이드는 스페인어와 영어로 교대로 안내한다. 주황색 구명조끼를 제대로 착용한 것을 확인하고 환경보호를 위한 주의사항을 전달하더니 바로 출발했다. 태양은 강렬해도 시원한 바다 바람과 공기가 그만이었다.
항구에 매어둔 요트 위 전기줄에 참새처럼 가지런하게 앉아있는 새가 있었다. 살펴보니 가마우지였다. 바다 쪽으로 멀리 나가니 나무는 없고 바위만 있는 산 로렌초섬이 보였다. 가이드는 섬에 민가는 없고 페루 해군기지가 주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위 중턱에 페루 국기에서 보던 문양 그림이 선명했다. 산 로렌초섬에는 리마를 습격하기 위한 해적들이 살기도 했다고 한다. 로렌초섬 아래에 엘 프로톤이란 작은 무인도가 있는데 두 섬 사이를 크루즈 보트가 지나간다. 이 무인도는 한때 정치범들을 수용할 감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로렌초섬의 해안 쪽에 낮게 돌출한 바위들은 하얗게 뭔가로 덮여있다.
군집생활을 하는 바다새 무리의 똥이 굳어진 구아노(Guano)다. 새들의 배설물이 쌓이고 응고돼 화석화된 것이다. 인광석이라고도 하는데, 질소와 인 등 무기물 함량이 높아 비료 또는 화약의 원료로 사용되는 귀한 자원이다. 배설물이 씻겨 내려가지 않고 쌓여야 하므로 비가 적은 건조한 지역이여야 하고, 양이 많아야 하므로 덩치가 큰 새들이 모여사는 지역이여야 한다. 큰 바다 새들이 모여 살기 위해서는 근처에 충분한 먹거리, 즉 어류가 있어야 한다. 합성 암모니아나 화학비료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구아노는 실어가기만 하면 바로 돈이 되는 최고의 보물이었다. 이 보물을 차지하기 위한 구아노 전쟁, 소위 '새똥 전쟁'이 페루에서 두 번이나 벌어졌다. 스페인과 페루간의 전쟁 그리고 칠레를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이 그것이다.

이야기로만 듣던 구아노를 보트 여행을 통해 눈으로 보게 된 셈이다. 구아노가 쌓인 바위 위쪽에 부리가 길고 몸집이 큰 새들이 보인다. 바로 펠리컨이다. 바위 위에 모여앉아 긴 목을 빼들고 우리 유람선을 쳐다보는 듯했다. 그 옆으로 작은 부리를 내밀고 있는 새들이 아까 요트 위에 매달려 있던 가마우지다. 갈매기들도 보였다. 로렌초섬을 조금 더 벗어나자 그야말로 바다새들이 바위에 새까맣게 모여있는 바위섬이 보인다. 선장은 이 무인도를 승객들이 관찰할 수 있게 조용하게 접근했다.
하얀 구아노가 흘러내리다 말고 쌓인 바위 끝에 펠리컨들이 빼곡하게 앉아있다. 저 정도의 크고 긴 부리면 어떤 물고기도 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아래쪽에 뒤뚱뒤뚱 걷는 작고 귀여운 동물들이 보였다. 검고 흰 경계선이 눈 뒤에서 목까지 이어지고 배가 하얀 훔볼트 펭귄이다. 남극에서 시작한 차가운 바닷물이 남미 대륙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북으로 흐르는데 바로 훔볼트 해류다. 이 해류를 타고 적도에서 멀지 않은 이 무인도까지 올라온 펭귄이라서 훔볼트펭귄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펭귄을 본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덩치가 작은 갈매기들도 모여있었다. 촬영된 사진을 확대해보니 빨간 부리와 부리 옆에 난 하얀 콧수염 모양의 긴 털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소위 잉카제비 갈매기다. 이 섬에 모여사는 페루 펠리칸, 가마우지, 훔볼트 펭귄 그리고 갈매기 무리들의 배설물이 구아노라는 천연비료를 만든다. 앞서 설명한 훔볼트 해류 덕분에 해양 플랑크톤이 넘치고, 이를 먹이로 한 멸치와 같은 작은 어종이 풍부하다. 이 어류들이 다시 덩치 큰 바다새들의 충분한 먹이가 된다. 생물학적 다양성이 풍부한 이 근처의 섬들이 카빈자스 제도(Islands of Cavinzas )인데 국가에서 보호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항구를 떠난지 1시간쯤 지나 목적지 팔로미노섬(Islas Palamino) 가까이 도착했다. 이 섬에는 우리를 반기는 동물이 또 있다. 바다사자들이다. 섬 근처에서 헤엄을 치고 다이빙을 하는 모습이 눈 앞에서 펼쳐졌다.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섬의 바위에 무리지어 꼼짝 않고 누워 햇살을 즐기거나 가볍게 뒹구는 바다사자는 파타고니아 유람선을 타고 여러차례 봤지만 이렇게 적극적이고 날쌘 바다사자들은 처음이다.
이 크루즈의 가장 큰 재미 중에 하나가 눈 앞에 날뛰는 바다사자들과 함께 바다 수영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승객들은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상하의가 연결된 구명복인 플로팅 슈트(Flouting Suit)를 입고 물 위로 뛰어들었다. 플로팅 슈트는 부력으로 물에 뜨기 때문에 수영이 미숙해도 문제없다. 바다사자들이 사람들의 접근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어울려서 수영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나도 플로팅 슈트를 입고 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바다사자와 어울리지는 못하고, 팔로미노 섬 앞에서 태평양에 몸을 담그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플로팅 슈트를 입었지만 물이 두려운 나로선 바다사자들이 있는 섬으로 헤엄쳐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배로 돌아온 나는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다른 일행들이 바다사자와 어울려 노는 장면을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섬에도 햇빛을 즐기는 바다사자 무리와 언덕 위에 펠리칸 몇 마리도 보였다.

30분정도 바다 수영시간이 끝나고 크루즈는 다시 항구로 돌아왔다. 따뜻한 태평양 햇살을 즐기는 크루즈, 무인도에서 구아노를 만드는 거대한 바다새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여행이었다. 아래 부리가 큼직하게 늘어나는 거대한 새 '펠리칸'과 고향을 떠나 정착하다가 멸종위기를 맞은 귀염둥이 '훔볼트 펭귄' 그리고 빨간 부리에 노란 포인트가 있고 긴 흰 수염을 가진 화려한 멋쟁이새 '잉카제비갈매기'를 만난 것은 예상하지 못한 수확이었다.
◇ 라푼다 해안의 일몰과 잉카 전통식사
저녁은 라푼다 해안에서 리마에서 만난 지인 부부와 태평양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즐겼다. 재미있는 것은 리마에서 내가 즐기는 이 일몰을 같은 시간에 한국에서는 동해, 즉 태평양에서 떠오르는 일출로 쳐다본다는 사실이다. 같은 태양이 한쪽에서는 일몰이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출인 셈이다. 일몰을 즐긴 후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다. 예상 외로 해안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오후 6시30분이면 문을 닫는 식당들이 많았다. 관광객보다 지역주민들을 상대하는 식당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인 듯했다.

지인의 노력으로 찾아간 해산물 식당에서 페루 전통음식을 즐겼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세비체를 안주삼아, 나는 안데스산에서 나온 물로 만들었다는 페루 맥주 'Cusquena'를 마셨고, 아내는 자색 옥수수로 만든 전통음료 치차 모라다를 마셨다. 식사로 선택한 페루식 해물 볶음밥 '아로즈 콘 마리스코스'(Arroz con Mariscos)와 '카우사'(Causa)도 좋았다.
'아로즈 콘 마리스코스'는 처음에 스페인식 볶음밥인 빠에야(Paella)인줄 알았는데 조금 달랐다. 쌀과 각종 해물이 재료인 것은 같지만, 조리방식이나 소스 등이 달랐다. 둥근 쌀을 재료와 함께 익히며 요리하는 빠에야와 달리 길쭉하게 된 쌀을 미리 익혀 다른 해물과 섞는 점이 달랐다. 빠에야는 맛과 향을 내는 향료로 샤프란을 사용하지만 페루식 볶음밥은 페루산 붉은 매운 고추인 아지 판카(Aji panca)를 사용한다.
카우사는 노란색 고추와 라임이 든 으깬감자 사이에 닭고기, 참치 또는 해산물을 끼운 매콤한 겹 감자요리다. 샐러드일 수도 있고 사각 또는 둥근 모양의 케이크 형태여서 디저트같기도 했다. 카우자는 페루의 전통 먹거리 재료인 감자와 노란 고추를 이용해 만든 것이다. 정복자 스페인과의 독립전쟁 그리고 칠레와의 전쟁 때에 여성들이 페루의 자유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 판매한 애국음식이라고 한다.
페루를 잘 아는 지인과의 식사한 덕분에 세비체, 치차 모라다, 아로즈콘 마리스코스, 카우자와 같은 페루 전통음식과 음료를 즐기고, 음식의 레시피나 사연을 배우는 의미있는 시간이 됐다.


글/ 이상홍
(현)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여행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숲 해설가
(전)정보통신기확평가원 원장/ KT파워텔 대표/ KT 종합기술원 부원장/ KT 중앙연구소장
저서=까미노, 꽃중년이 걸은 꽃길, 꽃의 향기 소통의 향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