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관광두레 주민사업체 연계 '지역여행상품' 공모
2025-03-10
남미는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서구의 침략으로 시작된 역사의 흔적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한달 가까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등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20편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태고의 자연경관, 역사, 그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가는대로 담았다. 남미를 다녀온 분들에게는 추억 돌아보기로, 여행을 계획중인 분에게는 사전정보로, 남미라는 외딴동네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제30편 [꽃중년 여행노트] '리마' 신도심에서 긴 남미여행 마무리>에서 이어집니다.
아내와 함께 한 약 한달간의 남미 5개국 여행에 대한 연재는 생각보다 더 길어졌다. 당초 20회 정도를 예상했지만 여행지를 되돌아보면서 하나하나 챙겨 쓰다보니 써야 할 내용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남미 여행기간은 한달 남짓인데 연재는 이보다 훨씬 긴 8개월까지 이어지게 됐다. 연재를 하는 8개월동안 남미 여러 나라를 다시 머무는 것같아 행복했다. 이제 남미 이야기를 총정리하면서 긴 연재를 마무리할까 한다.
◇ 남미여행 5대 변수에 대한 실제와 대응
우선 남미여행 때 고려해야 할 5가지 변수에 대해 내가 겪은 실제와 극복 내용을 정리한다. 내가 생각하는 5가지 변수는 날씨 운세, 로컬 항공, 치안 상태, 고산 적응, 건강유지다.
첫번째 날씨 운세는 그야말로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한달이나 되는 일정에 항상 좋은 날씨만 기대하긴 어렵다. 다행히 내가 여행하는 기간에 전반적으로 날씨 운이 좋았다. 덕분에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멋진 일몰을 즐길 수 있었고, 페루에서 마추픽추의 멋진 풍광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파타고니아 토레스델파이네 여행 중에는 흐린 날씨로 그림같은 토레스 삼봉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은 아쉽다. 볼리비아에서 유례없던 폭우를 만났지만 운좋게 탈없이 영혼의 계곡을 다녀왔다. 비바람이 불고 흐린 날씨도 내가 경험하고자 하는 그 지역의 특성 중 하나다. 흐린 날씨, 거친 바람도 긴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마음만 있다면 여행이 더 즐거워지고 여유가 생긴다.
두번째, 로컬 항공편의 변수다. 수하물의 지연 도착, 트렁크 파손, 내용물 분실, 항공사마다 다른 수하물 허용기준 등에 대한 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 내 경우는 지연 도착이나 파손은 없었다. 그러나 수하물 허용기준이 15kg에 불과했던 아르헨티나항공((AR)으로 곤혹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 AR이 대한항공과 같은 SKY팀 얼라이언스여서 해결할 수 있었다. 트렁크가 열린 흔적도 발견됐다. 분실된 물품이나 현금은 없었지만 당황스러웠다. 지연 도착이나 트렁크, 특히 바퀴의 파손은 치명적일 수 있다. 비상시를 대비해 한두 개의 옷가지는 핸드캐리하고 트렁크에 현금 등은 절대 넣어두지 말아야 한다.
세번째, 치안 상태다. 이 부분은 조심하고 대비하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 들고 있는 휴대폰도 최신기종 알아보고 채간다는 흉흉한 소문에 휴대폰 뒷면에 손가락을 끼울 수 있는 고리를 달았다. 그것도 모자라 줄을 연결해 목에 걸고 다녔다. 리우의 세라론 계단가는 길에서는 아예 사진촬영을 포기하고 휴대폰을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자유시간에 호텔 앞 상가와 골목을 돌아다니는데 심상찮은 눈으로 쳐다보는 시선이 신경쓰여 호텔로 되돌아갔고, 성당 문 앞에서 손을 내미는 홈리스들이 불편해 입장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시위로 길이 아예 막히거나 철도 파업으로 일정 전체가 흔들리는 대형사고는 다행히 없었다.
네번째, 누구도 피하기 어려운 고산 적응이다. 볼리비아 라파즈와 우유니, 페루의 쿠스코 지역에서 보내는 일주일 이상이나 되는 기간 내내 시달리며 극복해야 할 과제다. 해발 3500~4100m 이르는 고산지역을 메스꺼움, 답답함과 숨가쁨, 어지러움 없이 보내긴 쉽지 않다. 가이드의 주의사항을 명심하고 약 챙기고, 코카잎 차 마시며 천천히 걸으며 적응하고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나는 큰 문제없이 잘 견뎠지만, 아내는 4000m가 넘는 알티플라노에서 고산증세로 고생을 했다. 결국 쿠스코에서 5000m가 넘는 무지개산 비니쿤카 여행은 포기했다.
다섯번째, 한달 내내 건강 유지다. 한달동안 여름에서 겨울에 이르는 다양한 기후를 감당해야 하므로 그리 만만하지 않다. 한낮 햇살이 따가워 반팔 차림이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4시간 비행 후 도착한 우수아이아는 멀리 설산이 보이고 흐린 날씨에 겨울패딩을 챙겨입어야 했다. 파타고니아는 파란 하늘에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지만, 걸어가기 힘들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 지역도 있다. 고산 증세가 나타나는 볼리비아와 페루에서도 컨디션 관리가 쉽지 않았다.
변화가 심한 낮선 땅에서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며 거의 매일 바깥을 돌아다니니 컨디션 난조에 감기에 걸리기가 싶다. 두꺼운 옷보다는 얇은 옷을 껴입고 변화무쌍한 날씨에 미리 대응해야 한다. 또 컨디션에 문제가 있으며 몸과 타협해서 전략을 짜야 한다. 조심하며 일정을 그대로 소화할지 아니면 잠시 쉬어 컨디션 회복 후 나머지 일정을 팔팔하게 이어갈지는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나는 여행 초반에 환경 변화로 면역력에 문제가 생겨서 그랬던 걸로 생각이 되는데 눈이 시리고, 눈물이 나서 애를 먹은 적이 있었지만 잘 극복했다.

◇ 남미여행 중 최고의 풍광을 고른다면?
남미 5개국에서 풍광이 가장 멋진 지역은 어디였을까. 남미의 대자연은 유럽이나 북미의 자연과 차원이 달랐다. 지금까지의 여행에서는 비슷한 기후나 식생 그리고 자연환경을 경험했다. 그러나 남미 여행에서는 한번에 여러 기후대와 식생, 다양한 자연환경을 경험했다는 점이 크게 달랐다. 인상적인 곳이 하도 많아서 쉽지 않았지만 내 나름대로 '빅4'를 정리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본 일몰이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면서 일몰이 하늘뿐 아니라 얕은 물이 깔린 소금사막 전체도 황홀한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하늘과 땅을 포함한 온천지가 주황색으로 변하는 몽환적인 일몰이었다. 이전까지 본 일몰은 멀리 바다 뒤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태양이 만든 일몰이었다. 그래서 눈앞에 주황으로 물들어가는 일렁이는 바다의 모습을 즐기는 정도였다. 하지만 우유니에서의 일몰은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을 멀리서 보고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일몰과 하나되는 느낌이었다. 차원이 다른 일몰이었다. 인터넷에서 보던 비현실적인 사진 속에 내가 들어가 물아일체가 된 기분이었다. 천상의 비경이라 해도 될만한 우유니 사막의 일몰은 내 생애 최고의 일몰이었다.
물보라에 무지개가 생기고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이과수 폭포'의 장관도 잊을 수 없다. 우선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밀림 속으로 이어지던 이과수 강이 한 지점에서 폭포로 떨어지는 광경을 직관했다. 두번째로 마쿠코 사파리에서 보트를 타고 폭포 바로 앞까지 접근해 비옷 안까지 파고드는 거친 물살을 맛봤다. 세번째, 계곡길 그리고 좁은 데크를 걸으며 계곡 건너에, 또 발아래에서 쏟아지고 다시 모이고 떨어지는 크고 작은 폭포들을 즐겼다. 악마의 목구멍 근처 전망대에서 본 폭포가 가장 절경이었다. 산책길의 끝이 거대한 폭포 끝쪽으로 길게 만들어진 데크 길로 이어졌다. 폭포에서 날아온 포말로 젖은 바닥은 살짝 미끄럽고, 몸은 젖지만 조심조심 걸어가며 엄청난 폭포를 만끽할 수 있었다. 눈에는 길게 늘어진 절벽 아래로 하얗게 떨어지는 물길이 가득하고, 귀로는 엄청난 굉음이 들리고, 얼굴에는 부서져 날아오는 포말이 부딪혔다. 폭포로 떨어진 물은 데크 옆 돌 틈을 지나며 포말을 만들고 그 위로 멋진 무지개가 만들어졌다. 눈만으로 보는 자연이 아니라 눈과, 귀 그리고 몸으로 느끼는 감동적인 대자연의 모습이었다.
세번째를 꼽는다면 태고의 신비를 가진 파타고니아의 변화무쌍한 모습이다. 루타40 도로를 달리는 버스의 창밖에 펼쳐지는 파타고니아의 거친 모습이 좋았다. 끝없는 돌산과 황량한 대초원, 그 초원을 내 땅인 양 무리 지어 달리는 과나코, 파란 하늘을 유유히 나르는 코도르가 주인이었다. 유람선을 타고 본 파타고니아는 바다 같이 깊은 호수, 호수 같이 파란 바다였다. 거친 파도를 이기며 우뚝 선 세상 끝 등대, 그 아래 황제 가마우지와 바다사자의 평화로운 공존이 부러웠다. 바람이 부는 언덕과 태초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바다 같은 호수, 파타고니아 고원에서 길들여지지 않고 남아있는 야생이 좋았다.
세로토레 트래킹을 했지만 세로토레 산은 끝내 못 보고 멀리 뾰쪽산 피츠로이는 볼 수 있었다. 비바람이 불고 안개 낀 날씨에 토레스 삼봉을 보지 못하고 계획된 산책도 포기했지만 대신 변화무쌍한 파타고니아의 본색은 제대로 맛본 셈이다. 바람 부는 관속 숲에서 2월에는 어렵다고 한 노란색의 칼라파테 꽃을 영접했고, 파타고니아를 다시 오게 해준다는 마법의 칼라파테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다. 아르헨티노 호수에 떠 있는 70m 높이의 신비스러운 빛깔의 얼음벽, 페리노 모레토 빙하가 쩡쩡 소리내며 울고 있었다.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태고의 모습이라는 파타고니아가 변화무쌍하고 고약한 성깔을 오랫동안 간직하길 빈다.

네번째는 잉카의 공중도시 '마추픽추' 유적이다. 천길 낭떠러지를 돌아가는 아찔한 길을 달려 올라온 망지기 집앞 언덕에 서니, 와이나픽추 봉우리 아래 마추픽추의 모습이 펼쳐졌다. 신비스러움 그 자체였다. 마치 북파 주차장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돌계단을 올라 마주한 백두산 천지를 볼 때의 그 느낌이었다. 사진으로 여러 번 봐서 뻔하게 알고 있는 모습이지만 눈앞에 현실로 펼쳐질 때 감동은 또 달랐다.
특히 앞의 3가지와 달리 대자연에 잉카인들이 남긴 수수께끼들이 숨어있어 더 큰 의미가 있다.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쌓여올린 놀라운 석조 기술, 수확한 작물을 7년간 저장할 수 있는 저장공간 콜카, 태양신, 수많은 제단들, 산 중에 있는 계단식 밭을 경작할 수 있는 수로 시설, 왜 이 험지에 공중도시를 건설했는지 아직도 다 풀지못한 비밀 그리고 왜 버려졌을까? 대자연에 잉카인들의 천문학, 건축술, 농사 분야의 놀라운 기술을 간직한 도시 그리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함께하는 마추픽추는 남미 최고의 볼거리로 부족함이 없다.

◇ 현재 남미 사람에게 스페인은 어떤 의미일까?
남미는 우리나라 반대편에 있다. 그래서 계절도, 시간대도, 밤과 낮도 모두 반대다. 어린시절 일본 TV시리즈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일 때문에 아르헨티나로 떠난 엄마를 찾아 남미로 떠난 소년의 우여곡절을 그린 내용이다. 그만큼 남미는 멀고 낮선 지역이다.
실제로 남미를 여행하면서 이전에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 그리고 새로 이해하게 된 사실들이 참 많다. 남미라는 대륙의 크기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도 그중에 하나다. 우리가 흔히 보는 메르카토르 방식의 세계전도에 나타난 크기보다 훨씬 크다. 내가 여행한 남미 국가들의 크기도 만만치 않다. 남미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브라질은 세계에서 5번쨰로 큰 나라이고, 남한 면적의 85배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8번째로 큰 나라이고, 남한의 27배나 된다. 여행한 5개국 중 가장 작은 나라이자 긴 나라인 칠레도 우리나라보다 7.5배나 크다.
남미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브라질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가 스페인어로 통용된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지만 두 언어가 유사해서 따로 배우지 않아도 언어소통이 가능할 정도다. 남미는 유럽 정복자들로부터 오랜기간 지배를 받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식민 지배를 한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처럼 스페인에 대한 감정이 아주 나쁠 것으로 생각했지만 우리 경우와는 조금 달랐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식민정복 과정의 잔혹성을 고려할 때 어쩌면 이해가 안되는 점이다. 검은 전설(Leyenda Negra)이라는 말이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의 금과 은과 같은 자원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희생이 있었다. 또 가톨릭 선교를 명분으로 앞세웠지만 그 과정에 강제 개종, 원주민 종교와 문화의 파괴가 만만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또 원주민들에게는 전혀 면역력이 없는 질병을 가져와 대규모 희생이 따랐던 점도 검은 전설이라는 오명을 갖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식민 정복 기간이 너무 길었다. 300년이란 긴 기간동안 정복의 명분으로 앞세운 가톨릭이 원주민들의 토속 종교와 일부 혼합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국민들의 신앙으로 자리잡게 됐다. 원주민들이 모시던 신전을 파괴하고 그 위에 대규모 성당을 짓고 원주민들을 개종하게 했다. 필요에 따라 원주민이 모시는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를 성모마리아와 동일시하기도 했다. 가톨릭 교인이 현재 70%정도가 된다.
언어 역시 나라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스페인어가 공용어로 통용됐다.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사용 주민이 전체 주민의 85%를 차지한다. 원주민 비율이 높은 안데스 지역을 중심으로 케추아어, 아이마라어 그리고 과라니어를 사용하는데 볼리비아의 경우는 원주민 언어도 공용어로 지정했다.
종교적 동질성, 언어적 통합뿐 아니라 정복자와 원주민과의 혈통 혼합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북미의 경우 식민이든 정착이든 유럽인들이 이주할 때 가족 단위로 넘어와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정착한 것과 달리, 남미는 기본적으로 유럽인이 정착할 목적이 아니라 자원을 착취할 목적이었다. 그래서 남미로 들어온 콩케스타도르(Conquistador)들은 남자들로 구성됐다. 자연스럽게 원주민 여성과의 혼혈이 대규모로 발생했고 이렇게 탄생된 메스타조들이 세월이 지나면 남미의 가장 많은 인종으로 자리잡게 됐다. 잉카제국의 정복자인 프란시스코 피사로도 잉카 황제의 여동생과 결혼했고, 피사로가 암살된 후 키스페 시사는 다른 콩키스타도르와 재혼했다.
스페인의 경우 오랜시절 이베리아 남부지방을 점령한 이슬람교도들이 교류가 많아 혼혈에 대한 거부감이 작은 점도 작용했다. 훗날 메스티조(Mestizo)들이 남미에서 태어난 스페인인 크레올(Creole)과 협력해 독립을 이루는 큰 세력이 된다. 결국 남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략자, 문화를 파괴하고 원주민을 희생시킨 정복자로서의 스페인인에 대한 적개심도 있지만 스페인어를 쓰고, 가톨릭을 믿으며 조상으로서의 스페인인이라는 감정도 지니고 있다. 역사 교육의 부재로 정복 초기 스페인인들의 야만적 행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혼혈 과정에서 스페인의 피가 조금이라도 더 섞인 것이 더 자랑이기도 한 인식이 있다.
나라별로 스페인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다르기도 하다. 백인 비중이 높고 나름 잘 사는 나라인 아르헨티나나 칠레, 브라질의 경우는 정복자로서의 스페인에 대한 감정이 그리 크지 않다. 원주민의 비율이 높고, 토착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페루나 볼리비아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스페인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다.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와 함께 백인의 비중이 가장 큰데 89%나 되고 칠레, 브라질도 50%에 육박한다. 브라질의 경우 흑인이 6%정도로 다른 국가에 비해 많은 편이다. 브라질을 식민지화한 포르투갈 정복자들은 커피, 사탕수수 등 대농장 경영 그리고 금광 발굴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서아프리카 해안지역에서 흑인 노예를 대거 수입하였다. 그 결과 브라질은 토착 인디오 원주민과 유럽인에 흑인 그리고 그 인종들의 혼혈로 가장 다양한 인종을 가진 나라가 됐다.
남미에는 이처럼 혼혈로 인해 다양한 인종이 존재하지만 식민시절부터 인종 차별이 존재했다. 유럽에서 온 순수 백인인 페닌슐라, 남미에서 태어난 백인이 크레올,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조 그리고 원주민과 흑인 노예간의 신분적 차별이 있었고 이를 식민사회 통제를 위해 활용했다. 개인의 사회적 지위까지 결정하는 이 체계는 스페인 카스트 제도로 부를 만큼 엄격했다. 이런 신분 차별이 정치적 출세에 한계를 느낀 크레올이 결국은 독립운동을 일으키는 기반이 됐다. 인종차별에 대한 오랜 전통으로 지금도 백인의 피가 얼마나 더 섞였는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동양인도 예전 흑인 노예를 보는 정도의 인식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한다.
결국 스페인은 가톨릭이라는 종교, 스페인어라는 공용언어를 남기고 피를 이어온 조상이라는 측면 그리고 나라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토착 원주민과 문화를 말살하고 자원을 침탈한 침략자라는 측면이 공존한다.

◇ 토착 문화와 유럽 문화가 혼합된 모습
안데스와 아마존을 중심으로 다양한 민족들이 흩어져 사는 남미에 15세기 정복자로 유럽인이 들어오면서 일방적인 정복과 착취가 시작됐다. 하지만 오랜세월이 지나며 양쪽 문화가 섞이며 혼합된 형태로 새로운 형태의 문화나 삶의 양식이 된 경우도 많다. 이런 독특한 문화의 흔적을 여행을 통해 발견하기도 했는데 몇 가지를 정리한다.
우선 정복의 명분이 된 가톨릭의 전파 과정에도 빠른 개종과 설득을 위해서 원주민들의 토속적인 신앙의 형태를 일부 수용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비록 힘의 우위를 보여주기 위해 토착 신앙의 근본인 신전을 부수고 그 위에 거대한 성당을 건축했지만 성전에서도 토착신앙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볼리비아 라파즈의 산프란시스코 대성당은 바로코 양식으로 유럽의 유명 건축물에도 부족함이 없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이 성당의 정면 외벽에 다양한 부조가 있는데 그 중에는 볼리비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 그리고 코카잎을 물고 있는 창조의 신 바라코차가 있다. 쿠스코 대성당의 성전에 모셔진 예수님 상은 이 지역 원주민의 피부색처럼 검은 예수님이다. 잉카문명의 발상지인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 있는 코파카바나 성모 성당은 남미 최고의 성지인데 원주민의 모습을 한 검은 성모님을 모시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검은 성모님을 대지의 어머니인 파차마마로 인식한다.

두번째로 전통의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볼리비아 여성들이 착용하는 볼러햇(Bowler Hat)이라는 전통모자가 있다. 원래는 영국인들이 사냥할 때 쓰던 남성용 모자였지만 철도 건설을 위해 볼리비아에 온 철도노동자들의 머리를 보호할 목적으로 사용했다. 크기가 작은 모자를 원주민들에게 나눠줬는데 볼리비아 여성들이 전통의상과 함께 널리 착용하면서 토착화됐다. 볼러햇이 토착화되는 과정에 착용방식, 색상 그리고 장식에 따라 지역, 여성의 사회적 지휘를 나타내는 정체성의 상징이 됐다.
컬러풀한 전통의상을 입은 볼리비아 여성을 '촐리타'라고 하는데 이들은 '포예라'라고 하는 치마를 입고, 어깨에는 '아구아요'라는 만능보자기를 두른다. 또 두 갈래로 딴 머리 위에 중산모, 즉 '볼러햇'을 쓴다. 볼리비아를 여행하며 만난 전통의상의 촐리타들은 이제 볼리비아의 다양성과 강인한 볼리비아 여성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고 있다.

마지막은 요리의 경우다. 페루의 요리 중에는 스페인식 조리방식이 이 지역의 재료를 만나 새로운 형태의 전통요리가 된 경우가 적지 않다. 페루식 해물볶음밥 아로즈 콘 마리스코스(Arroz con Mariscos)가 그 중 하나다. 스페인식 볶음밥인 빠에야가 페루의 식재료를 만나 변형된 형태다. 스페인식 해물 빠에야는 걸쭉하게 잘 익은 밥에 홍합, 조갯살, 오징어와 같은 해물, 토마토, 파프리카, 버섯, 양파 등이 어우러진다. 맛과 향을 내기 위해 샤프란과 같은 향신료가 들어간다. 아로즈 콘 마리스코스는 스페인식 볶음밥인 빠에야의 페루식으로 보면 될 듯하다. 쌀과 각종 해물이 재료인 것은 같으나, 조리방식이나 소스 등이 다르다. 둥근 쌀을 재료와 함께 익히며 요리하는 빠에야와 달리 길쭉한 이 지역의 쌀을 사용하는데 미리 익혀 다른 해물과 섞는 점이 다르다. 빠에야는 맛과 향을 내는 향료로 샤프란을 사용하나 페루식 볶음밥은 페루산 붉은 매운고추인 아지 판카(Aji panca)를 사용한다.
페루는 스페인뿐 아니라 19세기에는 중국인들도 광산,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많이 들어오게 된다. 중국인들이 페루의 식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로모 살타도(Lomo saltado)는 전통 페루음식이 됐다. 소고기를 토마토, 양파, 당근과 같은 야채에 간장과 식초 등 중국의 소스를 넣어 중국식 조리기구인 웍에서 볶은 요리다 여기에 유럽식의 감자튀김을 곁들여 접시에 차려나온다. 이 음식은 중국의 요리법과 페루의 재료가 결합되고 유럽식 음식이 더해진 퓨전음식인 셈이다.

페루의 유명세프인 가스통 아쿠리오는 페루의 해산물 볶음밥을 이태리 제노바 가문의 젊은 여성과 중국 광동 가문의 남자가 페루에서 만나 이룬 금지된 사랑의 산물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여성의 리조또와 남자의 볶음밥이 보태어 페루의 해물밥이 됐는데, 그 안에는 페루의 신선한 해산물 식재료에 유럽의 치즈, 중국의 소이 소스와 들어가 맛과 풍미를 더했다고 했다.
이상으로 여행을 통해 발견한 종교, 의상, 음식에서 유입된 문화와 남미의 토착 문화가 혼합되어 새로운 문화가 되고 남미 전통문화의 하나가 되는 예를 들었다. 오랜기간 동안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여 더 나은, 또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쉽게 수용하는 것도 남미인들의 강점이 될 수 있어보인다.
◇ 태초의 자연과 토착의 문화가 지켜지길
남미의 가장 큰 자원은 때묻지 않은 자연이 아닌가 싶다. 유럽의 정복자들에 의해 오랫동안 지배를 당했지만 아직 태고의 자연이 파괴되지 않고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아마존의 밀림은 지구의 허파로서의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고, 파타고니아의 황량한 초원과 호수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대자연 모습 그대로다. 땅끝 경쟁을 벌이는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남극을 포함한 남미의 자연을 지키는 경쟁으로 이어지고, 안데스를 지키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문화, 삶의 방식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번 남미 여행에 개인적으로 단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아름다운 대자연을 걷는 트래킹을 마음껏 해보지 못한 점이다. 파타고니아 산과 호수를 발로 눈으로 속속 들이 확인하고 즐기는 60km의 W 트래킹, 험한 오르막길을 고행하듯이 걸어야 하는 42km 3박4일의 잉카 트레일을 위해 다시 한번 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칼라파테 아이스크림도 먹었으니 그럴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
그동안 긴 글 읽어주신 독자님에게 우선 감사드린다. 남미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 또 남미에 대해 궁금해 하신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긴 연재를 챙겨주신 마이스투데이의 윤미경 대표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매 연재마다 근사한 제목을 붙여주시고 오탈자를 바로잡아 주신 점, 독자 입장에서 문맥을 바로잡아 주신 점 덕분에 더 나은 여행기가 됐다.


글/ 이상홍
(현)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여행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숲 해설가
(전)정보통신기확평가원 원장/ KT파워텔 대표/ KT 종합기술원 부원장/ KT 중앙연구소장
저서=까미노, 꽃중년이 걸은 꽃길, 꽃의 향기 소통의 향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