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 여행노트] 남미의 부자나라 '칠레' 맛보기
2024-10-28
남미는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서구의 침략으로 시작된 역사의 흔적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한달 가까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등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20편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태고의 자연경관, 역사, 그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가는대로 담았다. 남미를 다녀온 분들에게는 추억 돌아보기로, 여행을 계획중인 분에게는 사전정보로, 남미라는 외딴동네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14편 [꽃중년 여행노트]남미의 부자나라 '칠레' 맛보기>에서 이어집니다.
오후에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1541년 식민지배가 시작된 '아르마스(Armas) 광장'이다. 광장 입구에 스페인 정복자이자 이 도시를 건설한 총독 빼드로 데 발디비아(Pedro de Valdivia)의 기마상이 있고, 그 대각선에 원주민 영웅 라우타로 기념물이 서 있다.
아르마스 광장은 무기 광장이다. 스페인 침략자들은 남미의 주요 지역을 식민지로 차지했지만 쫓겨난 원주민들이 언제 몰려올지 모르는 위협 속에서 살았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원주민이 쳐들어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중앙 광장으로 달려와 무기를 챙겨들고 그들을 막았다. 그러니 누구나 빨리 접근할 수 있는 중앙 광장에 무기를 저장해둬야 했다. 그 광장이 바로 아르미스 광장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대성당, 시청, 우체국을 짓고, 시장이 만들어졌다.
19세기 초반 칠레는 스페인 식민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했지만 독립의 주역이 그동안 착취당했던 칠레 원주민이 아니라 스페인에 기반을 둔 크레올이었다. 남미에서 태어난 백인 크레올은 스페인에서 온 백인 즉 패닌슐라로부터 받는 차별 대우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스스로 칠레를 다스리고자 독립을 쟁취한 것이다. 스페인은 그들이 물리쳐야 할 침략자라기보다 피를 이어받은 조상인 셈이다.
실제로 칠레의 독립을 이끈 호세 데 산 마르틴이나 베르나르토 호이킨스가 아니라 식민 침략자인 발디비아가 칠레 중심지인 아르마스 광장을 여전히 차지하고 있는 이유다.
아르마스 광장의 또다른 주인공 라우타로는 원주민인 마푸체 부족의 추장 아들이다. 발디비아에 붙잡혀 하인 또는 마부로 일하게 되는데 영리한 그는 스페인 군대안에서 군사훈련, 전투 배치, 기마술 등을 모두 익힌 후 탈출한다. 마푸체 족의 리더가 된 그는 스페인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이미 적의 전투 방식을 꽤뚫고 있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라우타로는 1553년 투카펠 전투에서 마침내 발디비아 총독을 체포해 사살했다.
이 광장에는 스페인의 식민지배 역사와 원주민들의 목숨 건 저항의 역사가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 말을 탄 정복자는 지금도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인데, 온몸이 조각나 고통스러워 보이는 원주민 영웅의 눈은 아직도 슬퍼보인다. 식민시대는 끝나고 독립을 했지만 침략자의 당당한 기마상이 유지되고 있는 칠레의 현실을 보니, 일제 36년 식민지배를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우리의 사고와는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마스 광장은 어떤 유럽도시와 견줘도 밀리지 않는 멋진 정방향 구획이다. 산티아고 대성당, 우체국 그리고 시청, 박물관이 광장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광장의 나무, 분수, 벤치 등은 마치 평화로운 쉼터이자 공원같았다.
광장에는 전통적인 유적 외에 눈길을 끄는 광경이 있었다. 배꼽 위의 몸과 박박 깍은 머리에 온통 금색을 칠하고 스님처럼 합장한 동상이었다. 아니, 꼼짝않고 서있는 사람이다. 그의 앞에는 동전통이 놓여있다. 대성당 앞에는 초록옷으로 잘 차려입은 금발의 여자가 큼직한 통 위에서 팔을 벌리고 꼼짝않고 서있는 모습도 보였다. 모두 돈벌이용 행위 예술이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이므로 소매치기도 조심해야 한다.
광장을 지나 몇 구획을 걸어가니 콜로니얼풍의 모네다궁이 보였다. 처음에 조폐청으로 지은 건물이다, 그래서 모네다, 즉 화폐라는 명칭이 붙었다. 관공서를 쓰기엔 너무 예쁜 건물이었는지 지금은 대통령관저가 됐다. 이 예쁜 건물은 어울리지 않게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이 관저의 주인공이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이었던 시기가 있다. 아옌데는 선거를 통해 당선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이었다. 칠레의 지성이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네루다도 그의 정권 수립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미국은 칠레가 아옌데 정권을 기점으로 남미에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가 1973년 쿠데타를 일으키며 대통령궁으로 진입했다. 아옌데 대통령은 저항하다가 더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라디오를 통한 마지막 연설을 한 후 자살했다.
이후 피노체트는 17년간 군부 독재를 했다. 독재 기간동안 강도나 부패 정치인을 과감하게 처벌하고 경제자유화, 국영기업 민영화, 인플레이션 안정화 등을 펼치며 칠레식 경제혁명을 성공시킨다. 경제는 살렸지만 인권 탄압과 반대파의 숙청 등으로 많은 원한을 쌓았고, 긴 독재에 부정축재가 없을 수 없었다. 피노체트는 1991년 3번째 선거에서 패하며 해외로 도피했다. 1998년 영국에서 체포돼 2000년 송환조치 됐지만 가택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도중인 2006년 90세 나이로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
피의 독재와 칠레의 기적이란 양면을 가진 피노체트가 국내의 어떤 정치인들을 연상하게 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말년은 국내의 어떤 정치인과는 달리 행복한 마감으로 보인다.
모데다궁 바로 앞은 헌법광장이다. 광장 한쪽에 자살한 아옌데 대통령의 동상이 있다. 광장 앞에는 15개의 국기가 걸려있다. 적색은 피, 청색은 하늘, 별은 진보, 흰색은 안데스 설산을 상징한다. 가운데 국기에 문양과 함께 새겨진 '이성 또는 힘으로'는 칠레정신을 함축한다.
광장을 둘러본 뒤 산티아고 시내에서 가장 높은 산크리스토발 언덕에 올랐다. 두 번에 걸쳐 케이블카를 타고 870m 정상에 오르니 대형 성모마리상이 우뚝 서 있었다. 22m 높이의 이 상은 스페인 독립 100주년이 되는 1918년 프랑스 정부가 선물한 것이다. 브라질 리우의 코르코도바산 정상에 포르투칼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30m의 예수상이 리우의 랜드마크라면, 이 성모마리상은 산티아고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성모 마리아상 바로 아래 작은 성당이 있다. 들여다보니 미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뒤쪽에 잠시 앉아 조용히 기도를 했다. 큰 탈없이 지금까지 지내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앞으로 남은 날들도 잘 지켜주시기를 부탁드렸다. 서울의 남산 정도의 높이인 산크리스토발 언덕 정상에 올라서니 산티아고 시내가 좌우로 보였다. 중심지는 고층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비해 반대쪽에는 바닥에 깔린 듯 낮은 지붕이 빽빽한 빈민가였다. 산 우측에 사는 사람들은 산 좌측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꿈을 평생 갖고 살겠지만 나는 산티아고 시내 어디에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해발 5000m 안데스산맥 아래쪽에 분지로 자리잡은 산티아고 하늘은 매연과 미세먼지로 가득했다. 이런 희뿌연 하늘을 안고 매일 산다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또 토요일이어서 내려진 시내 곳곳의 가게 셔터에는 너무 지저분하고 험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그래피티라고 하기보다 낙서에 가까웠다. 예술로 보기엔 전혀 편치 않는 자극적인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먹은 한식도 맛 자체보다 그 가게까지 가는 길이 편하지 않았다. 거기에 내가 묵었던 호텔 옆 성당 앞에는 손을 내미는 노숙자들이 항상 길을 막고 있었다. 이면도로를 걸을 때도 편치 않는 사람들이 많아 휴대폰은 아예 꺼내지도 못하고, 항상 앞뒤를 살피며 걸어야 했다. 이런 곳은 돈 주고 살라고 해도 자신이 없다.
어쨌거나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다양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도시다. 스페인 식민지배의 흔적이 흠이 되지 않고, 원주민 마푸체의 저항도 자랑스럽게 기리고 있다. 피노체트의 피의 독재는 흠이지만 그가 남긴 경제성장의 기적은 잘 사는 나라 칠레의 기반이 되는 아이러니가 있는 도시다.
우리나라가 칠레와 가장 먼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결과, 칠레 와인을 비롯해 칠레 홍어, 블루베리, 진미채, 중국짬뽕에 들어가는 대왕 오징어가 수입되고 있다. 원초적 전투력으로 메스티조 중심 독립을 쟁취하고 영토전쟁마다 승리하며, 인종차별 없는 사회를 만든 나라. 부패가 비교적 크지않는 민주화로 주변국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아 몰려오는 남미의 부국을 만든 칠레. 어쩌면 파라과이가 꿈꾸는 그런 나라를 칠레는 이미 만들어가고 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글/ 이상홍
(현)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여행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숲 해설가
(전)정보통신기확평가원 원장/ KT파워텔 대표/ KT 종합기술원 부원장/ KT 중앙연구소장
저서=까미노, 꽃중년이 걸은 꽃길, 꽃의 향기 소통의 향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