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 여행노트] 전통의 '촐리타'와 현대의 '텔리페리코'

[이상홍의 남미여행기⑰] '라파스'의 지상과 하늘
마이스투데이 2024-11-18 08:01:02

남미는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서구의 침략으로 시작된 역사의 흔적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한달 가까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등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20편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태고의 자연경관, 역사, 그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가는대로 담았다. 남미를 다녀온 분들에게는 추억 돌아보기로, 여행을 계획중인 분에게는 사전정보로, 남미라는 외딴동네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국회의사당에 걸린 볼리비아 국기와 문양 (사진=이상홍)

<제16편 [꽃중년 여행노트] '해발 3500m' 고산 여행의 시작>에서 이어집니다.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La Paz)를 돌아보면서 이들의 삶을 살펴봤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어려움 속에서 가족을 살리고 전통을 지켜나가는 데 큰 몫을 하는 것은 여성들이다. '촐리타'라고 불리는 볼리비아 여성들의 이야기, 흙기둥 속에 깃든 영혼의 이야기가 볼리비아의 정신이라면, 험한 고산 환경에서 교통체증을 일순에 해결한 텔리페리코는 볼리비아의 미래를 보여주는 혁신의 아이콘이 아닐까 싶다.

◇ 볼리비아 여성들의 전통복장 

촐리타(Cholita)라고 부르는 볼리비아 여성들의 전통의상은 참 특이하다. 기본적으로 알파카와 야마의 털로 만든 옷으로, 고산지대에서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보온성이 뛰어나다. 두 갈래로 딴 머리에 짧은 챙에 비해 높다란 중절모를 쓰고 있다. 전통 상의 위에 가디간이나 숄을 걸친다. 치마는 '포예라'(Pollera)라고 부르는 넓고 주름진 패티코트를 여러 겹 껴 입는다. 빵빵한 치마와 플랫한 신발 때문에 작은 키는 더 작아보이고 허리둘레는 더 넉넉해 보였다.

자존심 강한 원주민 여성들이 즐겨입는 전통 복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자는 식민시대에 스페인에서 넘어온 유행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특히 일곱 색깔의 형형색색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있는 모습은 너무 이색적이다. 이 보자기를 '아구아요'(Aguayo)라고 한다. 여성들은 이 보자기에 채소나 물건을 담기도 하고 애기를 업을 때 사용하기도 한다. 만능 보자기인 셈이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 하양 등의 일곱 색깔은 볼리비아 원주민을 상징하는 색이다. 일곱 색깔 격자무늬가 그려진 깃발은 '위팔라'(Wiphala)라고 하는데 이는 볼리비아의 2가지 국기 중 하나다.

라파스 시내에서는 전통 복장을 한 촐리타들은 쉽게 볼 수 있었다. 전통도 세월 속에서 조금씩 퇴색되고 바뀔 수밖에 없나 보다. 포예라 치마는 여전했지만 가디간 속의 상의는 추위에 강한 패딩 점퍼로 대신한 사람들이 많았다. 모자도 챙이 짧은 검은색의 전통 중절모자보다 햇살을 가리기 좋은 챙이 긴 모자를 쓰고 있는 여성들도 제법 많았다.

생활력 강한 촐리타 여성들은 가난한 볼리비아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다. 그녀들의 강인함은 '촐리타 레슬링'이라는 새로운 쇼도 만들었다. 이 쇼는 원주민 전통의상을 입은 촐리타 여성들이 링 위에서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담아 재미있는 쇼를 보여준다. 

▲포예라를 입고 위팔라 무늬의 아구아요를 둘러맨 볼리비아의 촐리타들 (사진=이상홍)

◇ 수만개의 흙기둥 '달의 계곡'

라파스 시내에서 외곽으로 한참 오르막을 올라가면 진흙산이 있다. 이곳을 '달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고온건조한 날씨에 단단하게 굳어버린 진흙이 오랜세월 비바람에 침식되면서 수만개의 흙기둥이 만들어진 곳이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긴 닐 암스토롱이 이 지역을 방문한 후 마치 달처럼 생겼다는 말하면서 이후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실제로 달의 표면이 이러한지는 알 수 없지만 선인장이 자라는 황량한 땅에 기기묘묘한 흙기둥이 솟아있는 것이 신기했다. 흙기둥 사이로 관광객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뒀다.

우리는 흙기둥 사이에 만들어둔 길과 계단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관광객이 들어서자 전통 망또를 두른 원주민 1명이 제법 높은 흙기둥 끝에 올라가 전통악기로 엘코도파사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신기하게 생긴 진흙산에서 전통 복장의 원주민이 연주하는 전통 음악이 영상에서 보던 것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연주를 마치고 내려온 그는 관광객들이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즈를 취해줬다. 팁을 주니 포즈는 더 다양해진다. 폭우로 며칠째 이곳으로 오는 길이 폐쇄됐다가 이날부터 개방됐다고 한다. 하루만 빨랐어도 '달의 계곡'을 못볼뻔 했다. 운이 좋았다.

▲진흙산 '달의 계곡' 흙기둥에 올라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원주민 (사진=이상홍)

날이 다시 흐려지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다음 목적지가 달의 계곡과 유사한 진흙산인 '영혼의 계곡'(Valle de Las Animas)이다. 그런데 비가 내리니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오르막을 구불구불 올라가는 미니버스가 힘들어보였다. 갈 수 있는데까지만 가보겠다는 운전사의 말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흙길을 헤치고 힘들게 버스는 '영혼의 계곡'에 도착했다. 이곳은 관광지로 개발된 지역이 아니었다. 흙기둥 수백개를 엮어만든 것같은 절벽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힘들게 달려올만한 가치가 있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나 나올법한 신비한 자연이다. 아마도 이 지역사람들은 흙기둥 하나하나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흙기둥에 깃든 영혼들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이곳은 해발 3697m다. 안쪽으로 하이킹을 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져 있다고 하는데 안쪽으로 들어가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빗방울이 살짝 약해진 틈을 타서 우리는 흙기둥 절벽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열심히 담았다.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 편안해진 것은 아니고, 천천히 걷고 움직이는데 익숙해지면서 불편한 숨쉬기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었다. 

▲흙기둥 하나하나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영혼의 계곡' (사진=이상홍)

다시 시내로 구불구불 내려가는 빗길이 위태위태했다. 빗물이 모여 물살이 거세진 개울은 요란한 소리를 냈다. 호텔에 도착하는데 30분이나 걸렸다. 저녁식사를 하러 간 레스토랑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니 오늘 내린 비가 심상찮은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TV에서 정규방송 대신 기상특보가 계속해서 나왔다. 폭우 피해상황과 복구현장도 비추고 있었다.

시내에는 개울이 넘쳐 일부 도로가 물바다가 됐고, 자동차 침수뿐만 아니라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는 뉴스를 여러 지역을 옮겨가며 방송했다. 배수시설이 부족한 점 그리고 라파스라는 도시 자체가 가파른 저지대이다보니 비만 오면 빗물이 순식간에 깔데기처럼 아래로 모여들어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고원지역는 원래 강수량이 적어 이 정도의 비에도 피해가 크다. 우린 이런 상황인 줄도 모르고 고지대에 있는 '달의 계곡'에다 '영혼의 계곡'까지 다녀왔던 것이었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폭우, 폭염, 한파가 시도 때도 없이 닥치는 게 일상이다. 볼리비아처럼 가난한 나라는 이상기후로 인한 기상현상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 라파스의 대중교통 '텔리페리코'

라파스에서는 하늘을 보면 어디서나 공중을 오가는 케이블카, 즉 '텔리페리코'를 볼 수 있다. 2014년 개통한 라파스의 대중교통수단이다. 현재 텔리페리코는 11개 노선이 운항되고 있다. 각 노선은 색깔로 구별되고 있어서 11가지 색깔의 케이블카가 라파스 공중을 오르내리고 있다. 오스트리아 회사의 기술을 들여왔는데 요금이 500원 수준이니 저렴한 편이다. 지금은 라파스의 명물이 되어버려서 관광객들도 라파스 시내를 구경하기 위해 텔리페리코를 타고 있다.

안티플라노(Antiplano) 고원지대 가운데 유일하게 분지이고 저지대인 라파스는 그나마 숨쉬기 나은 곳이다. 라파스는 '평화'라는 의미다. 이곳은 식민시대에 도시로 개발됐으며, 도시가 발전하면서 인구가 점점 많이 유입돼 지금은 9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이곳에 유입되다보니 도심 외곽지대는 달동네로 이뤄져 있다. 언덕길이 많아 도시의 교통체증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그렇다고 고도차이가 400m나 되는 도시에서 지하철을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바로 케이블카다. 원주민 출신 모랄레스 대통령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된 공중교통을 현실화시켰다.

그래서 우리 일행도 라파스의 상징 '텔리페리코'를 탔다. 처음에는 파란색 라인을 탔고, 그 다음에 이어서 노란색 라인을 탔다. 매표소 창구나 발권시스템 그리고 케이블카는 모두 우리나라의 지하철 시스템에 비길 정도로 현대식이고 깨끗했다. 줄을 서고 탑승하면서 만난 볼리비아 사람들도 지상에서 만난 사람들과 달랐다. 깨끗한 교복을 입은 학생 그리고 출퇴근하는 회사원들이 많았다. 전통복장의 촐리타를 1명도 만나지 못했다. 텔리페리코 요금은 우리 돈으로 고작 500원 수준이지만 달동네 사람들에게는 결코 만만한 금액이 아니어서 이들은 아직도 가파른 언덕을 걸어다닌다고 한다.

▲라파스의 현대화된 교통수단 '텔리페리코' (사진=이상홍)

텔리페리코를 타니 라파스 시내가 진짜로 한눈에 보였다. 그런데 건물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뿐 아니라 주택의 창문을 통해 방안까지 훤히 보였다. 부자집도 피할 도리가 없다. 넓은 정원이 훤히 보였다. 텔리페리코가 하늘 위로 다니니,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지만 대책은 없어보였다. 실제로 프라이버시 문제로 케이블카를 반대했지만 강력한 좌파 정권의 의지를 이길 수 없었다. 케이블카 바로 아래에 있던 고급저택의 백인들 중 상당수는 집을 비워두고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고 한다. 

라파스에 도착해서 우리는 이틀동안 시내와 외곽지역을 두루 돌았다. 식민시대의 유적들, 동네 특유의 자연환경을 살폈다. 3600m나 되는 고산지대를 적응하는 방법은 따로 없다. 그저 천천히 걷고 움직이는 방법밖에 없다. 숨쉬는 것도 답답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참고 지내야 했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 잠시 숨을 고르면서 쉬어가야 하고, 가끔은 코카 마테차를 마셔 고산병을 달랬다. 많이 어지럽거나 구토가 날 정도로 힘이 들면 12시간마다 약을 복용해야 한다. 우리의 고산지대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글/ 이상홍
 (현)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여행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숲 해설가
 (전)정보통신기확평가원 원장/  KT파워텔 대표/  KT 종합기술원 부원장/  KT 중앙연구소장
 저서=까미노, 꽃중년이 걸은 꽃길, 꽃의 향기 소통의 향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