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 여행노트] 하늘과 땅 경계가 사라진 '우유니' 사막

[이상홍의 남미여행기⑱] 우유니 소금사막 투어 첫날
마이스투데이 2024-11-25 08:00:03

남미는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서구의 침략으로 시작된 역사의 흔적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한달 가까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등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20편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태고의 자연경관, 역사, 그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가는대로 담았다. 남미를 다녀온 분들에게는 추억 돌아보기로, 여행을 계획중인 분에게는 사전정보로, 남미라는 외딴동네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우유니 사막에서의 일몰 (사진=이상홍)

< 제17편 [꽃중년 여행노트] 전통의 '촐리타'와 현대의 '텔리페리코'>에서 이어집니다.


라파스(La Paz) 도착 이틀째. 드디어 이번 남미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향했다.

우유니에서는 이틀을 머물 예정이어서 2박할 짐을 따로 챙겼다. 라파스는 고산지대여서 숨쉬기 곤란한 것을 빼면 적당히 건조하고 적당히 따뜻한 날씨에서 여행하기 아주 좋았다. 하지만 우유니 사막은 일교차가 심한 지역이다. 더구나 해가 진 후에도 일정이 있어서 경량 패딩이나 바람막이같은 겉옷이 필요했다. 가이드는 파란 하늘과 하얀 사막에 어울리는 멋진 사진을 얻으려면 색깔있는 옷가지를 챙기라고 조언했다. 우유니도 라파스와 비슷한 수준의 고원이니 고산병 예방약도 챙겨야 했다.

오전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라파스 시내를 빠져나오니 높은 지대에 위치한 달동네에 켜둔 불빛이 검푸른 하늘 아래 마치 은하수 같았다. 저 불빛 하나하나가 이른 새벽 잠이 덜 깬 눈을 부비며 하루를 준비해야 하는 서민들의 피곤함이 담겨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주황색 불빛에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만들어갈 희망도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름답게 보였다. 우리나라의 번영도 전쟁 후 달동네에서 꾸는 꿈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좁은 오르막 커브길을 요란한 소리를 내며 힘겹게 오르는 미니버스에서 창가를 보며 잠시 감상에 젖었더니 어느새 엘 엘토 공항에 도착했다. 며칠동안 고산지대에 적응했다고 해도, 해발 4000m가 넘는 지역은 여전히 쉽지 않다. 우유니까지 탈 비행기는 볼리비아항공(BoA)이었는데 지금까지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를 이동하며 탔던 항공기와는 달랐다. 몸체도 작았지만 공항 건물 앞마당에 서 있는 비행기까지 걸어가서 올라탔다. 그래도 버스로 8시간 걸리는 거리를 1시간이면 충분하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공항에 내리니 우리를 태우고 다닐 투어 지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프 1대당 4명이 동승했는데 우리는 다른 부부와 자연스럽게 한팀이 됐다. 우리가 탄 지프는 산토스라는 젊은 친구가 운전하고 있었고, 그는 가이드와 사진촬영을 겸했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다. (사진=이상홍)

◇ 기차무덤과 콜차니 마을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기차무덤이었다. 포토시에서 은광이 발견되면서 한때 잘나가던 철로였지만 포토시가 폐광되면서 그 기능을 잃고 말았다. 그후 물자를 운반하거나 사람들의 이동수단으로 일부가 사용되다가, 도로가 발달하면서 비싼 운용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버려졌다. 도로가 깔리기전에 정부가 철로를 복구하는 공사를 진행했지만 원주민들의 반대로 결국 공사는 중단됐다고 한다. 철로가 사라져 쓸모없어진 기차들을 한곳에 모아둔 것이 최근에 핫스팟이 된 것이다.

역사적 가치보다 젊은이들의 사진촬영 명소로 소문이 난 때문이다. 파란 하늘 아내 지평선까지 길게 뻗은 철로, 버려져 녹슨 기차의 기관부, 부서진 화물칸, 그 위에 그려진 그래피티 등은 사진을 찍을 명당이다. 소문이 나면서 근처에 기차박물관도 만들고, 국기나 깃발, 사인 보드 등 인증사진을 찍을만한 장소가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는 지프 운전기사 산토스가 시키는대로 철로 위에서, 부서진 기관차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었다. 비록 기차는 녹슨 모습이었지만 파란 하늘이 그 뒤를 받쳐주고 있었으니 어디를 찍어도 환상적인 사진이 나왔다. 다섯 종류의 기가 걸린 국기 게양대, 'UYUNI'라는 영문이 아래로 한자씩 새겨진 조형물도 중요한 인증샷 포인트였다. 의도적으로 관광지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인증사진이 소문이 나면서 유명해진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어쨌든 폐 기차나 기관차, 철로를 한데 모아놓고 포토시의 은광 스토리를 입힌 것이 이 정도면 대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을 다해 버려진 폐 기차들의 무덤이 아니라, 버려진 기차가 훌륭한 관광지로 재탄생한 장소다.

우리는 다음 방문지 '콜차니 마을'로 향했다. 원주민들이 재래식 방식으로 채취한 소금을 정제하고 분쇄하는 공장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원주민들은 협동조합 형태로 공장을 운영했다. 우유니 사막에서 잘라낸 소금벽돌을 철판을 가열해 정제하고 분쇄하는 과정 등을 보여줬다. 관광객을 상대로 정제된 소금을 판매하며 수익을 올렸다. 사실 주된 소득원은 마을입구 도로 양쪽에 즐비하게 늘어선 기념품 가게를 통해 얻는 듯했다. 알록달록한 색상의 가방, 인형, 숄, 의류 등 전통 수공예 소품들이 가게마다 가득했다.

▲콜차니 마을의 기차무덤 (사진=이상홍)

◇ 우유니 사막을 달리다

콜차니 마을을 떠나 5분 정도 달리니 창밖으로 파란 하늘 아래 하얀 벌판이 보였다. 우유니 소금사막이다. 전라남도만한 면적이 모두 소금으로 뒤덮여 있다고 하니 실로 엄청나다. 6000만년 전 태평양 해저가 융기하며 바닷물을 고도 3660m 알티플라노고원에 끌어올리면서 형성된 곳이다. 바닷물은 고원의 건조한 날씨에 수분이 다 증발하고 소금만 남았다.

이곳에 있는 소금의 양은 100억톤에 이른다고 한다. 소금의 두께가 가장 깊은 곳은 120m나 된다고 한다. 우기 때 소금사막에 물이 적당하게 고이면 이곳은 세계 최대의 거울로 변신한다. 이 거울이 만들어내는 멋진 풍광이 유명 포토그래퍼들의 사진으로 소개되면서 우유니 사막이 유명해졌다. 믿기지 않는 비현실적인 풍광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전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교통과 숨쉬기 힘든 고원임에도 몰려들고 있다. 튀르키예 여행 때 가봤던 카파토키아 소금사막과도 많이 달랐다.

우유니 사막투어는 이른 새벽부터 일몰 이후까지 이어졌다. 파란 하늘 아래 거울의 반영을 즐기는 낮투어, 해가 지평선을 넘어가는 순간을 즐기는 일몰투어, 한밤에 쏟아지는 별을 관찰하는 스타투어 그리고 일출투어로 다양했다. 

지프로 5분을 더 달리니 차량출입을 통제하는 엉성한 게이트가 보였다. 드럼통 위에 장대같은 철봉이 걸려있다. 이곳부터가 소금사막이었다. 우기라서 사막에는 적당한 물이 고여있다. 소금사막 위를 달리는 지프에서 보이는 풍광은 환상적이다. 눈 앞에 하늘과 땅이 둘이 아니라 하나로 합쳐져 보였다. 사막이 고인 물이 거울 역할을 하면서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거울의 세계를 약 30분간 달리고 나니, 앞에 조형물이 보였다. 우리는 지프에서 내려 우유니 사막을 걸었다. 바닥에 물이 찰랑거렸지만 미리 챙겨신은 장화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조형물은 '다카르 기념비'(Monumento al DAKAR)였다. 2014년 다카르 자동차 경주대회에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이 루트에 포함됐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기념비 바로 뒤에 사막에서 유일한 건물인 플라야 블랑카 소금호텔(Hotel de Sal Playa Blanka)이 있었다. 우유니 최초 소금호텔인데 지금은 숙박기능이 없어 호텔이라고 할 수 없고, 내부에는 기념품점이 있었다. 건물은 소금벽돌로 만들어져 있고 내부에는 라마, 콘돌과 같은 동물 조형물, 호텔이었던 흔적, 소금벽돌로 된 페치카가 남아있다. 야간에 일몰 또는 일출투어를 하는 관광객들이 추위를 피해 잠시 쉬어가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이 호텔 바로 앞이 만국기 광장이다. 

▲우유니 소금사막 풍경(위)과 다카르 기념비(아래) (사진=이상홍)

다카르 기념비와 만국기 광장에서 태극기를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었다. 바람에 맘껏 펄럭이는 만국기 광장도 사진을 찍기에 멋진 장소였지만 하얀 소금 바닥과 파란 하늘이 맞닿아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작품사진이었다. 고도가 3600m가 넘어 숨쉬기가 그리 편하지 않는 것 말고는 별 문제가 없었다.

배가 고픈줄도 모르고 경치에 취해서 소금사막 여기저기를 장화 신고 첨범첨벙 돌아다녔는데 가이드가 점심식사가 준비됐다고 불렀다. 우리는 사막 한쪽 간이식당에 모였다. 큼직한 파라솔 아래 흰 식탁보가 올려진 4인용 식탁이었다. 기사겸 가이드인 현지인 크루들이 랜드로바 지프 지붕에 간의 식탁과 의자, 차양, 조리 및 식사 도구, 식사 재료 등을 싣고 다니며 간이 식당을 차린다.

식사로 쇠고기 BBQ, 닭고기 튀김, 다양한 야채와 과일, 밥 등이 뷔페로 차려져 있었다. 볼리비아 현지 한국인 가이드가 준비한 김치까지 제공되니 야전에 진수성찬이었다. 그래도 가장 인기있는 음식은 라면이다. 현지 가이드들이 큼직한 냄비에 끓이는 라면은 족족 바닥이 났다. 식사가 끝난 후 햇살을 가린 파라솔 아래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땅과 하늘이 경계없이 파랗게 펼쳐진 풍경을 즐기니 여기가 천국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인증샷 (사진=이상홍)

식사 후에는 전문 찰영기사로 변신한 가이드의 지휘아래, 개인별 그리고 단체로 다양한 포즈와 배경에 맞춰 인증사진을 남겼다. 미리 준비한 전통 망토 그리고 공룡, 깡통 등 소도구들도 적절히 사용해 재미있는 사진을 담았다. 바닥에 아예 누워 찍기도 하고, 우리말로 다양한 포즈를 지시하는 가이드의 헌신과 능력이 놀라웠다.

오후 4시쯤 소금사막 낮투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갔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소금사막 바로 입구에 있는 크리스탈 사마나 소금호텔이다. 호텔 프론트 건너편 휴게소의 넓은 소파도 그 앞에 놓인 둥근 탁자도 모두 소금으로 만들어졌다. 객실로 들어가는 통로의 벽, 기둥들이 모두 소금이다. 소금벽에 부조로 이 지역 동물들이 새겨져 있었다. 객실의 침대 프레임도 탁자도 다 소금이다. 소금호텔이란 이름에 모자람이 없었다. 소금만으로 이렇게 단단한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전엔 상상도 못했다. 호텔 안에는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성당도 있고, 규모가 제법 되는 회의실, 호텔 뒤쪽 다양한 조형물 또는 벽화,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소금사막 안에 있는 예전의 소금호텔(위)과 우리가 묵은 현재의 소금호텔(아래) (사진=이상홍)

◇ 물아일체 경험한 '내 인생 최고의 일몰'

우리는 오후 6시가 넘어 다시 소금사막으로 갔다. 일몰투어의 시작이다. 쌀쌀해지는 저녁날씨에 대비해 단단히 챙겨입었다. 지프로 20분 정도 달려서 사막 한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가이드들이 테이블을 2개 붙이고 그 위에 와인 잔을 올렸다. 잔에 레드 와인을 반쯤 채웠다. 저녁이 되면서 지평선에 구름이 많이 끼어 낮시간만큼 하늘이 아름답지는 않았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지평선에 해가 빨갛게 걸리자, 붉은 색의 와인 잔을 지는 석양에 맞춰 건배를 했다. 태양이 지평선을 넘어가면서 어두워지나 했더니 사방이 조금씩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하늘만 붉게 물드는 것이 아니라 땅도 같은 색깔로 변했다. 너무 신비로운 장면이었다.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여행을 다니면서 일몰을 지켜봤다. 국내에서는 경기만 소금길을 걸으며 궁평 해수욕장에서 만난 일몰도 좋았고, 가로림만 응도에서 본 일몰도 인상적이었다. 해외에서는 코타키나바루 탄중아루 해변에서 본 일몰이 개인적으로는 최고였다. 그런데 우유니 사막의 일몰은 차원이 달랐다. 

이전까지는 바다 저편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태양이 만든 일몰을 봤다. 그래서 눈 앞에 주황으로 물들어가는 일렁이는 바다의 모습을 즐기는 형태였다. 이에 비해 우유니 일몰은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을 멀리서 보고 감탄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일몰 속에 들어가 일몰과 하나되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보던 비현실적인 사진 속에 내가 들어가 물아일체가 된 느낌이었다. 천상의 비경이라 해도 될만한 우유니 사막의 일몰은 내 생애 최고의 일몰이었다. 온천지를 주황색으로 물들이는 일몰은 해가 진 후에도 한참동안 계속됐다. 이 순간을 남기기 위해 몽환적인 일몰 그리고 일몰 속에 나를 넣어 원없이 인생샷을 남겼다. 해가 떨어자자 먹구름이 밀려오며 순식간에 사방이 어두워졌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천둥과 함께 비가 내렸다.

▲우유니 사막의 낮과 밤 (사진=이상홍)

우리는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일출투어에 나섰다. 깜깜한 사막을 지프의 헤드라이트에 의지하며 일출 포인트에 도착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별들의 잔치를 예상했지만 그 환상을 깨졌다. 어제 저녁부터 몰려온 비구름이 하늘 곳곳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도 머리 바로 위에 남반부를 대표하는 별자리는 보였다. 센타우르스 알파와 그 아래에 있는 남십자상을 구름 속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오전 6시가 넘으니 일출이 시작됐지만 잔뜩 낀 먹구름에 기대했던 감동적인 일출은 볼 수 없었다. 대신 적당한 여명을 배경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을 이용해 일행들이 함께하는 다양한 팀 사진을 찍었다. 6명이 의자에 앉아서 두손 두발을 쫙 펴고 찍은 사진들은 우유니 사막을 다녀온 블로거들이 올린 소셜서비스(SNS)에서 늘상 보던 데칼코마니 사진이긴 하지만 촬영을 담당하는 분들의 연출이 돋보이는 우유니에서만 가능한 개성넘치는 사진들이다.


 
 글/ 이상홍
 (현)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여행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숲 해설가
 (전)정보통신기확평가원 원장/  KT파워텔 대표/  KT 종합기술원 부원장/  KT 중앙연구소장
 저서=까미노, 꽃중년이 걸은 꽃길, 꽃의 향기 소통의 향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