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 여행노트] '색다른 맛'...남미의 특별한 먹거리들
2025-01-20
남미는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서구의 침략으로 시작된 역사의 흔적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한달 가까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등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20편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태고의 자연경관, 역사, 그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가는대로 담았다. 남미를 다녀온 분들에게는 추억 돌아보기로, 여행을 계획중인 분에게는 사전정보로, 남미라는 외딴동네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제21편 [꽃중년 여행노트] 잉카제국 '페루'로 향하는 여정>에서 이어집니다.
페루 2일차에 우리는 오얀따이땀보를 거쳐 마추픽추를 오르는 전초기지 마을인 아구아스 깔랜테스에 도착할 예정이다.
전날 18시간의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아침 6시가 되니 저절로 눈이 떠졌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는데 베란다 쪽에서 동물 소리와 사람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열어보니 바로 앞 풀밭에서 라마와 알파카 여러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베란다를 통해 바깥으로 나갔다. 사육사는 동물들의 목줄을 묶어놓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호텔에 묵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도록 배려한 동물들이다. 나는 슬리퍼 차림으로 사람과 어울리고, 사진 찍는데 익숙한 동물들과 한참을 놀았다. 귀가 길고 쫑긋한 라마보다 귀가 짧고 복슬복슬한 알파카가 더 귀여웠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우르밤바강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조용했다. 아침을 먹고 나서 호텔을 한바퀴 돌아보니 잠만 자고 가기는 아까운 풍경이었다. 밤에 내린 비로 살짝 젖은 정원을 산책하거나 우르밤바 강가를 따라 걷는 것도 좋았다. 호텔 정문 건너편에는 운무에 덮여 윤곽만 보이는 고산도 참 멋졌다. 정원에 예쁘게 키워둔 꽃들은 비에 젖어 더 싱그러웠다.
◇ '작은 마추픽추' 유적지 피삭
호텔에서 오전 9시에 출발했다. 우르밤바 마을을 지나가니 창밖으로 동남아에서 보던 툭툭이가 보였다. 툭툭이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3륜 택시인데 좁고 험한 지형에서 운행하기 딱이다. 시장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길가에 빈 공터마다 옥수수밭이 보였다. 라파스에서처럼 일층만 짓고 만 집들이 기둥마다 철근을 삐죽 드러내고 있었다.
피삭(Pisaq) 유적지 가는 길에 작은 마을에 내렸다. 마을 입구에 사람보다 큰 쥐처럼 생긴 조형물이 보였다. 전통조끼를 입고 있는 이 조형물은 두 발로 서서 한 손을 들고 있었다. 사실 이 조형물은 쥐가 아니라 '꾸이(cuy)'다. '꾸이'는 원래 이름이 기니피그다. 쥐보다 큰 설치류인데 '꾸이꾸이'하고 울어서 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페루에서는 집집마다 식용으로 꾸이를 키운다. 꼬치에 끼워 불 위에 올려 기름를 빼는 바비큐 방식으로 익히는 꾸이 요리는 안데스 산지에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한 먹거리다. 이 동네 별미이기도 하다. 이 동네에 버스가 정차한 이유도 꾸이 요리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가게 앞 화덕에는 똥꼬부터 입까지 긴 꼬챙이에 꿰여 붉게 익어가는 꾸이가 걸려있었다. 모양부터 흉측하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냄새도 그리 친숙하지 않았다. 그래도 쿠스코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라고 해서 용기를 내 1마리 주문했다. 토막낸 꾸이가 감자 몇 조각과 함께 나왔다. 비위가 강한 일행 몇 명과 함께 한 토막씩 맛을 봤다. 겉은 바삭했지만 속은 살이 별로 없어 뼈가 바로 씹혔다. 별미라고 하니 시도를 했지만 맛도 기분도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피삭은 우루밤바강 상류인 성스러운 계곡 시작점에 위치한 잉카 요새였던 유적이다. 이곳은 수도 쿠스코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작은 마추픽추라는 별칭답게 언덕에 만들어진 계단식 밭, 신전, 창고, 거주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크기가 여의도 10배 정도다. 산 방향으로 쌓아올린 계단식 밭은 신비롭고, 요새 곳곳에 남아있는 정교한 돌벽은 놀라웠다. 돌계단을 따라 뱀의 문 아마르풍쿠를 지나 제사를 지내는 신전 유적까지 오르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산 위에서 계단식밭 아래 내려다보이는 마을 풍광은 정말 멋졌다.
피삭 유적지를 돌고 나오니 시장이었다. 화요일과 목, 일요일에만 장이 선다는데 우리가 갔던 토요일에도 관광객들로 북새통이었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가게에는 모자와 스웨터, 숄, 인형, 가방 등 알파카 털로 만든 전통 수공예품들이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다. 시장 끝에 어미 알파카와 새끼 알파카를 데리고 다니는 전통복장의 아주머니가 보였다. 아내와 새끼 알파카를 안고 인증샷을 찍었다. 당연히 모델료를 줘야 한다.
시장을 돌아 나오는데 건물 담벼락에 입체로 새겨진 잉카인의 얼굴과 매듭문자 키푸(kipu)가 보였다. 가로로 굵고 긴 줄을 들고 있고 그 줄 아래로 다양한 매듭이 만들어진 여러 개의 줄이 매달려 있다. 문자가 없었던 잉카에서 소통과 기록의 수단으로 알려진 매듭체계다. 매듭의 위치, 크기, 색상 등으로 정보를 주고받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숫자 정도를 표시하는 초기문자로만 알려져 있고 아직도 완전한 해독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문명의 수준으로 보면 문자를 충분히 만들 수 있었지만 문자를 만들면 태양신을 닮은 'O'가 들어가게 되는데 이를 태양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기는 부담도 있었다는 해석도 있다.
성스런 계곡 투어 중에는 유적지 말고도 재미있는 것들이 참 많았다. 도로가에 바람을 불어넣어 빵빵하게 만든 노란 비닐주머니를 장대에 걸어둔 가게가 있었다. 판 츄타(Pan Chuta)라는 쿠스코 지역빵을 파는 가게다. 직경이 무려 30cm가 되는 거대한 원반형 빵이다. 가이드는 방석빵이라고 불렀다. 방석으로 써도 될 만큼 빵이 크고 넓적했다. 밀 재배가 잘되는 계곡에 있는 오르페사 마을에서 시작된 빵인데 지금은 쿠스코 주변 관광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달콤한 아니스향이 나는 이 거대한 빵 하나면 몇 사람의 온종일 간식꺼리로 충분할 듯했다.
긴 장대에 빨간 비닐풍선을 매단 가게도 보였다. 이 가게는 치차(Chicha)술을 파는 주막이다. 치차는 잉카인들의 주식 중 하나인 옥수수를 이용해서 만드는 전통음료다. 자주색 옥수수로 만드는 '치차 모라다'는 알콜 도수가 없어 주스라고 할 수 있지만, 노란 옥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치차 데 호라'는 알코올 함량이 4~5도 수준인 술이다. 우리나라 막걸리와 도수나 색깔면에서 비슷해서 안데스 막걸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전에는 발효를 위해 엿기름 대신에 침을 이용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찾는 술이지만 제사 또는 축제에도 사용된다. 잔치에 사용할 치차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물에 불려놓은 옥수수 알갱이를 꼭꼭 씹어 모아 말려뒀다가 발효시켰다고 한다. 치차 막걸리를 마실 때 첫 한 모금은 공중에 뿌려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건 우리의 고수레와 비슷하고, 입구에 매달린 빨간 비닐풍선은 우리나라 주막에 걸린 청사초롱인 셈이다.
◇ 전통 페루 식사와 절벽 위 캡슐호텔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은 규모가 제법 큰 관광용 뷔페 식당이었다. 소 염통구이라는 '안티쿠조', 해산물과 야채를 레몬과 버무린 '세비체'를 드디어 만났다. 노란색 '잉카콜라'도 시켰다. 동네 어디나 열대과일이 지천이었다. 파파야, 메론, 아보카도 등. 그래도 난 달콤한 수박이 최고였다.
페루 사람들의 사랑이 담긴 '잉카콜라'는 잉카의 황금 문명을 상징하는 노란색깔의 음료다. 세계 모든 사람들의 입맛을 잡은 코카콜라였지만 페루에서는 잉카콜라를 이기지 못했다. 결국은 코카콜라가 잉카콜라 판권을 사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코카콜라 맛에 익숙한 내 입에 노란색 단물정도로 느껴지는 잉카콜라는 한 모금으로 충분했다. 시큼한 맛의 세비체도 별로였지만 안티쿠조는 입에 잘 맞았다. 여기서도 전통악기를 든 연주단의 연주가 식사시간 내내 이어졌다.
가는 길에 절벽 위에 설치된 캡슐호텔(sky lodge) 입구에서 잠시 쉬었다. 지상 122m 절벽에 만든 세상에서 가장 아찔하고 위험한 호텔이다. 절벽에 수직으로 객실 3개와 식당 하나가 그야말로 매달려 있다. 항공우주용 알루미늄과 폴리카보네이트 그리고 고강도 유리로 제작 된 것이라 안전하다고 한다.
캡슐은 4면이 모두 유리로 돼 있어 풍광이 끝내준다고 한다. 이미 3호점까지 생겼지만 예약이 하늘에 별따기라고 하니 인간의 모험심은 참으로 대단하다. 호텔까지 가려면 절벽에 걸쳐있는 좁은 철제 사다리를 올라가야 한다. 한 투숙객이 자일을 걸고 옆으로 매달려 한발 한발 호텔로 접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려올 때는 짚라인을 타고 내려오니 금방이다.
'지구마블 세계여행'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곽튜브와 배우 장기영이 이 호텔을 체험하는 모습을 봤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곽튜브는 끝내 포기하고 장기영 혼자서 숙소에 올라가 하룻밤을 보낸다. 호텔 투숙도 큰 경험이지만 멀리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볼거리다. 1박에 550달러나 되는 거금을 내고 1시간 가까이 암벽을 등반해야 도착하는 절벽 호텔.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선택을 할까? 모험을 즐기는 편이지만 아마도 내 답은 'No'일 것같다.
◇ 전통가옥 방문과 '오얀따이땀보'
우리는 '오얀따이땀보' 유적지에 가기전 마을에 있는 잉카 전통가옥 부엌에 들렀다. '오얀따이땀보'는 성스러운 계곡의 중심에 있는 쿠스코 다음으로 큰 도시이며, 잉카 시대의 마을 모습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부엌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꾸이'들이다. 20여마리 꾸이들이 싱싱한 풀을 던져주자 바로 달려왔다. 흰색, 고동색 그리고 두 색이 혼합된 털을 가진 꾸이가 옹기종기 모여 풀을 뜯어먹는 모습은 쥐라기보다 토끼같은 느낌이다. 저렇게 작고 귀여운 놈들을 내가 아침에 먹었다고 생각하니 살짝 미안함이 밀려왔다.
화덕 뒤쪽 돌벽은 연기때문인지 검게 타 있었는데 돌벽 사이에 몇 개의 벽감이 있었다. 가운데 벽감에 사람 해골 3개가 올려져 있고, 그 뒤에는 오래되었는지 마르고 먼지가 쌓인 꽃이 올려져 있다. 조상의 유골을 그대로 보관한 것이라고 한다. 그 옆쪽을 보니 박제한 콘도르, 말린 라마가 먼지에 쌓인 채 걸려있다. 이들의 중요한 양식인 바짝 말린 알좋은 옥수수 꾸러미도 매달려 있다. 부엌 입구 반대쪽 벽에는 전통기념품 좌판이 차려져 있다. 전통가옥에서 사는 잉카인의 모습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면서 기념품을 팔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는 듯했다.
좁은 돌담 골목길을 나와 오얀따이땀보 유적지로 향했다. 오얀따이땀보라는 지명은 오얀따이의 집이란 뜻이다. 이 지역을 지키는 오얀따이 장군은 황제의 딸을 사모했지만 쉽게 이루지 못했다는 전설이 남아있기도 하다. 잉카족의 거주지로, 언덕에 거대한 계단식 경작지가 있고, 왕족들이 체류할 시설이 있었다. 또 망코 잉카 황제가 이 지역을 근거지로 해서 이미 빼앗긴 쿠스코를 탈환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저항한 근거지이기도 했다. 망코 잉카는 스페인군의 공격에 저항하다 오얀따이땀보를 떠나 저지대 밀림으로, 그리고 다시 빌카밤바까지 퇴각해 최후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죽임을 당한다.
유적지 안에는 산 언덕 방향으로 계단식 밭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브이(V)자로 갈라진 계곡 아래 마을이 보였다. 계단식 밭 옆 돌계단을 따라 산으로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신전은 미완성 상태라고 하지만 엄청난 크기의 화감암들을 어떻게 산꼭대기까지 옮겼을까 싶었다. 이 돌들을 어떻게 빈틈없이 깎고 이어붙였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산 중턱에 설치된 곡물창고도 신기했다. 이 산 중턱의 바위 형태나 산세가 잉카의 창조신 비라코차의 옆 얼굴이라고 하는데 우연히 그런 형상이 된 것인지, 잉카 유적은 참으로 신기했다.
유적지를 둘러보고 내려가는데 전통복장을 한 잉카 어린이 2명이 따라왔다. 가이드가 불러세우니 둘은 수줍은 듯 망설이더니 가벼운 율동과 함께 케추어어로 노래를 부른다. 익숙하지 않은 듯 율동하며 노래하는 모습은 귀여운데, 용돈을 벌려고 나온 건 애처롭다. 가이드가 지폐를 챙겨주니 고맙다고 인사한다. 버스에서 내릴 때 무표정한 얼굴로 전통기념품을 내밀며 호객하는 여자 어린이를 만나기도 했다. 이 시간이면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저들끼리 어울려 놀아야 할텐데 너무 일찍 거친 삶의 현장에 버려진 것같아 마음이 쓰였다.
글/ 이상홍
(현)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여행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숲 해설가
(전)정보통신기확평가원 원장/ KT파워텔 대표/ KT 종합기술원 부원장/ KT 중앙연구소장
저서=까미노, 꽃중년이 걸은 꽃길, 꽃의 향기 소통의 향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