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 여행노트]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

[이상홍의 남미여행기(23)] 아구아스 깔리렌테스를 가다
마이스투데이 2024-12-30 08:00:02

남미는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서구의 침략으로 시작된 역사의 흔적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한달 가까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등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20편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태고의 자연경관, 역사, 그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가는대로 담았다. 남미를 다녀온 분들에게는 추억 돌아보기로, 여행을 계획중인 분에게는 사전정보로, 남미라는 외딴동네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잉카의 비밀정원 '마추픽추' (사진=이상홍)

<제22편 [꽃중년 여행노트] '작은 마추픽추' 피삭과 오얀따이탐보>에서 이어집니다.


오얀따이땀보에 관광객이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쿠스코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마추픽추'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다. 오얀따이땀보에서 마추픽추를 오르기 위한 마을 '아구아스 깔리렌테스'까지 1시간30분 가량 기차를 타야 한다. 페루 레일과 잉카레일 2종의 노선이 있는데 우리는 잉카레일을 이용했다. 역 주변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다. 비싸고 지연되기 일쑤지만 3주전에 예약해야만 원하는 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 마추픽추 관광을 위한 기차, 버스, 입장료 모두 만만치않다. 

기차에 오르는 것도 축제같았다. 승차할 열차의 객차번호가 적힌 키프 매듭 모양의 색색으로 치장된 깃발을 높이 들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전통복장의 여성의 뒤를 따라 객차에 올랐다. 객실은 순식간에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가득찼다. 기차가 달리자 전통의상을 입은 남녀가 오얀따이땀보 장군과 잉카왕의 딸과의 사랑이야기를 재연한다.

마추픽추행 열차는 가끔 운행이 중단되기도 한다. 2022년에는 물가상승에 대한 항의성 파업으로 운행이 중단됐고, 올 2월에는 온라인으로 바뀐 발권체계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시위하는 바람에 운행이 중단됐다. 마추픽추라는 세계적인 유적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관광객이나 관광회사에게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이것보다 효과적인 압박 방법은 없을 듯하다. 

▲오얀따이땀보에서 축제처럼 출발하는 마추픽추행 열차 (사진=이상홍)

창밖으로 빠른 유속의 우르밤바강과 하늘을 찌를듯한 안데스산들이 지나갔다. 기차는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더니 오후 6시30분쯤 어둑해진 마추픽추 마을 아구아스 깔리렌테스에 도착했다.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한 기자 플랫폼에서 내려 기념품 가게 골목을 지나 호텔에 들어서니 오후 7시가 넘었다.

호텔은 우르밤바강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바로 옆은 폭포같은 소리를 내며 회색 빛깔의 물을 토해내듯 흐르는 좁은 강이었고, 그 앞에는 고개를 높이 쳐들어야 꼭대기 보이는 산봉우리가 구름 속에 걸려있었다.

◇ 3일만에 만나는 공중도시 '마추픽추'

전날부터 내리던 비는 아침까지 이어졌다. 마추픽추에 구름이 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소용없다. 우리는 출발시간을 30분을 늦춰 오전 8시에 나섰다. 

아구아스 깔리렌테스라는 지명은 '뜨거운 물'이라는 뜻이다. 온천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인이 몰려드는 관광지답게 동네가 예쁘다. 고개를 들어야 하늘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방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좁은 계곡 한쪽은 작은 시내가 흘렀다. 이 물은 우르밤바강과 합류한다. 다른 한쪽은 도로다. 도로와 강가 양쪽으로 4~5층 규모의 호텔과 음식점, 주택들이 빼곡하다. 줄잡아 200개가 넘어 보인다. 거리에는 마추픽추로 가려는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마추픽추 입구까지 버스로 20여분이 걸렸다. 인파 속에서 내가 타야 할 공용버스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긴 열을 따라 버스에 올랐다. 마을이 고도 2040m이고 마추픽추가 2430m다. 버스는 지그재그 비포장 흙길을 400m나 올라갔다. 하행버스와 마주칠 때를 제외하고는 거침없이 달렸다. 손잡이를 꽉 잡고, 들썩이는 엉덩이는 최대한 힘을 주고 달래야 했다. 게다가 천길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다보는 아찔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계곡 아래에서 흐르는 강과 눈위로 삐져나온 봉우리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던 것이다. 

▲폭포처럼 흐르는 우르밤바 강가의 마추픽추 전초기지 마을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사진=이상홍)

버스에서 내리니 잉카트레일를 통해 걸어 올라오는 안내판이 보였다. 오얀따이땀보에서 45km를 3박4일 일정으로 걸어오는 트래킹 코스다. 꿈만 꾸다가 만 아쉬운 길이다.

입장권을 받아 가벼운 산길을 10여분 올라가니 왼쪽에 삼각지붕이 우뚝 솟은 망지기의 집이라고도 부르는 '가드 하우스'(Guardian house)가 보였다. 가드 하우스 앞쪽 언덕에 도착하니, 그 아래 마추픽추 마을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비가 그치면서 구름도 걷혔다.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의 고고학자 하이럼 빙험(Hiram Bingham)이 계단식 밭에서 농사를 짓는 원주민 소년 파블리토에게 2달러 팁을 주고 찾아낸 유적이다. 사실 빙험은 마추픽추 유적을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 황제가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고대도시 '빌카밤바'를 찾으려 했다. 그곳에 잉카의 마지막 황제가 감춰둔 황금이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는 성벽으로 견고하게 둘러싸여 마치 요새같은 이 유적지가 빌카밤바인 것으로 알았다. 그는 70여장의 사진을 찍고 다음해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잃어버린 잉카의 도시'(The lost city of Incas)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렸다. 산과 절벽 그리고 정글 속에 묻혀있어 접근이 불가했고, 공중에서만 볼 수 있어 '공중 도시'라고도 불렀다. 빙험은 그 후 정글 속에 덮힌 요새를 무려 6개월간 불을 질러 전체 형태를 파악하고, 미이라 등 각종 유물을 챙겼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이곳이 빌카밤바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이 원했던만큼의 황금 노다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눈 앞에 와이나픽추(젊은 봉우리)를 배경으로 마추픽추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눈에 익은 장면이긴 하지만 앞에 펼쳐진 공중 도시의 모습에 환호가 절로 나왔다. 10여년전 중국 연길에서 7시간 걸려 백두산 천지를 간 적이 있다. 북파 주차장에 내려 모래 바람을 맞으며 돌계단을 올라 마주한 백두산의 느낌이 꼭 그랬다. 뻔하게 알고 있는 장면이지만 눈 앞에 현실로 펼쳐질 때 느끼는 감동은 완전히 달랐다. 멋지다보다 신비롭다는 느낌이다. 입이 벌어지고 숨이 막힌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사람들은 와이나픽추 산 한가운데에서 잉카인들이 성스럽게 생각하는 퓨마의 모습을 찾고, 왼쪽의 작은 봉우리(우추이픽추) 2개에서 콘도로의 날개짓을 찾기도 한다. 

▲와이나픽추에서 내려다 본 마을과 가이드가 보여준 콘도르 형상 (사진=이상홍)

전망좋은 언덕에서 인증사진을 충분히 찍고, 주관문인 돌문을 지나 오른쪽에 계단식 밭 옆에 난 돌계단을 내려와 마추픽추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왕족과 귀족이 사는 거주지와 평민과 작업바들이 사는 거주지가 구분돼 있다.

마추픽추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신전도 여러 군데다. 하늘의 태양과 달 그리고 자연을 신으로 모시고 숭배하는 잉카인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태양의 신전(temple of the sun), 주신전(main temple), 3개 창문의 신전(temple of the 3 windows)이 있다. 주신전은 정면에 7개의 벽감이 있는데 세월이 지나며 돌 틈이 벌어져 기울어져 있다. 3개의 창문 신전은 태양을 마주보고 있다. 잉카인들의 새해인 6월 21이면 이 신전 중앙 창문에 딱 맞게 태양 빛이 들어온다고 한다. 

▲지붕에 인상적인 망지기의 집. 바로 앞이 마을 전체를 볼 수 있는 전망대(위)와 인티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태양의 신전 흔적 (사진=이상홍)

아무도 모를 이 높고 깊은 산 속에 농사가 가능하도록 돌에 홈을 파서 관개수로를 만들고, 계단식 밭을 만들어 수백명이 자급자족했다. 산 허리를 개간해 올라가며 만든 계단식 밭에는 옥수수, 감자, 코카 등 200여종의 작물들을 재배했다. 수확한 작물은 콜카(Colca)라는 저장 공간에 보관했는데 잉카의 창고에는 3년에서 7년간의 식량을 쌓아뒀다고 한다. 감자를 안데스의 서늘한 바람과 태양 빛으로 건조시켜 수년간 저장이 가능한 추뇨를 만들정도로 뛰어난 저장기술도 보유했다.

엄청난 크기와 양의 돌을 나르고, 정교하게 깎고 다듬고 쌓아 성벽, 돌담 그리고 집을 만들었다. 접착제도 없이 이어붙여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쌓는 석조기술은 신기에 가까웠다. 300톤이 넘는 돌도 있다고 한다. 수레가 달린 마차도 없었던 시절이다. 

꼭대기에는 거대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했다. 신전을 만들고 동서남북을 나타내는 나침반, 태양을 잇는 기둥 인티와타나(intiwatana)를 세우고 태양신에 대한 의식을 치렀다. 마을 끝인 와이나픽추 입구에는 높이 3m, 폭 6m 되는 거대한 바위가 돌난간 위에 올려져 있다. 소위 성스러운 바위로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던 장소다. 태양의 아들인 황제가 태양의 신전에서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잉카는 태양의 제국임에 틀림이 없다. 

잉카인들은 왜 2400m나 되는 깊은 산중에 이런 엄청난 계획적인 주거지를 만들었을까? 농경지, 치수 관리, 계급별로 나눠진 주거지, 하지와 동지 절기를 고려한 신전. 모든 것이 놀랍다. 어떤 용도였을까? 규모로 볼 때 700명 이하밖에 거주할 수 없는 이 도시가 황제의 별장, 피난처 또는 태양신 인티(Inti)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전이라는 해석들이 있다. 

왜 버려지고 사라졌을까? 잉카제국의 전성기인 15세기 중반에 자신의 신적인 권력을 시험하기 위한 파차쿠텍이 건설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멋진 계획도시가 어떻게 사는 사람도 없이 버려졌고, 300년이 넘게 묻혀버렸을까? 약 80년간 사용한 후 버려졌다는 말도 있고, 천연두가 퍼져 거주민들이 모두 사망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이해되지 않는 점이 너무나 많다. 2007년 중국의 만리장성, 인도의 타지마할 등과 함께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선정됐다.

천문학, 건축술, 농사, 저장 분야 등에서 엄청난 기술과 문명을 가진 잉카제국이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의 수백명 군인으로 인해 수십년만에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이럼 빙험은 마추픽추에서 발굴한 많은 유물을 조사하겠다는 명분으로 미국으로 싣고 갔다. 빙험은 죽었고, 유물은 지금까지 대부분 돌려보내지지 않고 예일대에 보관돼 있다. 약속과 달리 반환하지 않은 것은 문제지만 만약 전문적 발굴 없이 버려뒀다면 그게 남아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스페인 식민시대에 코리칸차 신전에서 챙긴 황금의 유물이 주물로 녹여지며 사라져 버린 전례를 보면 도굴될 여지없이 다 챙겨간 것이 잉카 유물 보전에 도움이 된 게 아닌가 싶다. 뭐가 정답인지 알 수가 없다. 과거의 일들이 세월이 지나며 의미도 달라지고 해석도 달라진다. 그래서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이 더 어려운 건지 모른다. 우리 역사도 마찬가지다. 

▲날개 따로 머리 따로인 '콘도르 신전' (사진=이상홍)

마추픽추를 돌아보는 경로는 단방향이다. 중앙 광장을 지나 콘도르 신전까지 둘러본다. 거대한 바위 2개가 콘도르가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이고 바닥에는 부리와 머리 모양이 보인다. 죽은 자의 영혼을 날라주는 신성한 새다.

맞은편에 우뚝 선 2720m 와이나피추에 오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루 400명 정도만 갈 수 있는데 눈으로 봐도 경사가 매우 급했다. 1시간 정도의 사투를 벌여야 도착하는 와이나픽추 정상은 또다른 환상적인 마추픽추 마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완벽한 콘도르 형상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시간여유가 없어서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험난한 내리막길을 달려 마을로 내려오니 벌써 오후 1시가 넘었다. 

▲마추픽추 마을을 향해 오르는 지그재그 산길 (사진=이상홍)
 
태양의 아들이자 잉카왕 파차쿠텍의 동상이 마을입구 강가에 서 있다. 투구와 가슴에는 태양의 신 인티가 새겨져 있고, 왼손에 든 긴 창의 끝은 도끼 모양인데 위로는 이들의 주식인 옥수수가 세워져 있다. 머리 위에는 거대한 콘돌(하늘)이 날개를 편 채 앉아있고, 뒤에는 이빨을 드러낸 퓨마(세상)가 따른다. 발 밑에는 혀를 내민 뱀(사후)이 꿈틀거리고 있다. 신비의 공중도시이자 요새 또는 신전인 마추픽추 주인의 화려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페루 전통식당에 들어섰다. 창가로 철길이 보이는 전망좋은 식당이다. 메인요리는 알파카 고기에 감자, 당근, 브로콜리 등이 보태진다. 사이드 메뉴로 나온 샐러드는 입맛에 잘 맞았다. 특별한 냄새도 없고 부드러운 알파카도 별미였다. 식사 중에 시작된 전통악기 연주는 식사를 마친 후에도 계속됐다.

▲우르밤바 강가에 세워진 태양신의 아들 '파차쿠티'의 늠름한 동상(사진=이상홍)

작은 크기의 기타라 할 수 있는 차랑고 그리고 안데스 피리인 케나가 함께하는 연주다. 엘코도 파사를 연주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울컥해지면서 눈물이 났다. 창피하게도 멈추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이 구슬픈 곡조의 노래는 여행 중 버스 안에서도, 라파즈 달의 계곡에서도,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 식당을 포함해 거의 매일 듣던 곡이다. 그런데 하필 이날 눈물이 왈칵 쏟아진 것은 왜일까? 

우리는 남미여행 23일동안 브라질 이과수 폭포, 아르헨티나의 땅끝 우수아이아, 칠레의 파타고니아,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거쳐 페루의 마추픽추까지 둘러봤다. 무사히 마쳐가는 여행에 대한 안도감 때문일까? 긴장이 풀려서일까? 다시는 못올 남미라는 매력적인 지역에 대한 미련, 나이가 들어감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함께한 모든 이들에 대한 감사함 등이 뒤얽힌 복합적인 감정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아딸딸한 피스코 사워를 마신 탓일지도 모르겠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전통의상의 춤행렬을 따라 기차를 탔다. 우리는 오얀따이땀보를 거쳐 다시 쿠스코를 향했다. 토요일 저녁이라 쿠스코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정상적인 패키지 일정은 리마를 거쳐 귀국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4일간의 일정을 추가해 쿠스코에서 2박, 리마에서 2박을 보내기로 했다. 다시 3400m 고도를 이겨내는 일이 숙제다.

▲마추피추 마을에서의 마지막 식사. 피스코 사워 때문에 엘코도 파사의 곡조가 유난히 가슴을 파고든다. (사진=이상홍)



 글/ 이상홍
 (현)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여행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숲 해설가
 (전)정보통신기확평가원 원장/  KT파워텔 대표/  KT 종합기술원 부원장/  KT 중앙연구소장
 저서=까미노, 꽃중년이 걸은 꽃길, 꽃의 향기 소통의 향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