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 여행노트] '색다른 맛'...남미의 특별한 먹거리들
2025-01-20
남미는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서구의 침략으로 시작된 역사의 흔적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한달 가까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등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20편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태고의 자연경관, 역사, 그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가는대로 담았다. 남미를 다녀온 분들에게는 추억 돌아보기로, 여행을 계획중인 분에게는 사전정보로, 남미라는 외딴동네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제27편 [꽃중년 여행노트] '색다른 맛'···남미의 특별한 먹거리들>에서 이어집니다.
남미는 다양한 기후대 그리고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진 거대한 대륙이다. 그만큼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자연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거나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을 여행지에서 만나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다른 여행지와 달리, 남미는 이런 특별한 경험이 가능하게 하는 땅이었다.
브라질 리우식물원 대나무 숲을 돌아다니는 '사구이 원숭이', 이과수 폭포 산책길에 만난 긴코 너구리라고도 부르는 '코아티', 모터보트를 타고 가다가 눈에 들어온 강변을 산책중인 '카피바라', 마코쿠 사파리 정문에서 만난 '88나비', 그리고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던 왕부리새 '투칸'이 대표적이다.
◇ 바다사자와 황제가마우지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거대한 호수인 아르헨티노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땅끝 등대로 가는 길에 있는 무인도에서는 바다사자와 황제 가마우지를 쉽게 마주할 수 있다.
바다사자들은 사람들이 탄 배가 접근해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섬 아래쪽 구석구석에 길게 누워서 햇볕을 즐기거나 때로는 느릿느릿 움직이는 바다사자 무리가 평화로워 보였다다.
바다사자는 물개와 몸매가 거의 비슷하다. 새끼를 낳는 포유류라는 점과 앞뒤 지느러미를 이용해 뒤뚱뒤뚱 걷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몸무게가 1톤에 이르는 수컷이 있을 정도로 몸집이 크고 털이 갈색이라는 점이 물개와 다르다. 수컷 한 마리가 암컷 10여 마리를 거느리며 집단번식을 한다. 우리나라에도 강치라고 부르는 바다사자가 독도를 중심으로 3~5만 마리가 서식했지만 가죽과 기름을 얻기 위해 무차별 남획하면서 지금은 멸종 상태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인적이 줄어들면서 바다사자가 항구 인근의 육지까지 올라왔다. 지금도 칠레의 푸에르토바라스항에는 연어를 가공하고 남은 부산물을 먹어먹으려고 항구에 아예 상주하는 바다사자도 있다고 한다. 함부로 노획하지 않고 생산 부산물까지 챙겨주면서 동네 강아지 보듯 함께 살아가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사람들이 놀랍다.
바다사자와 달리 섬 위를 부산하게 날아다니면서 섬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무리가 황제가마우지들이다. 흰 배에 검은 등을 한 황제가마우지들이 두 발로 딱 서 있는 모습은 흡사 펭귄 같았다. 그런데 검은 날개를 휘저으며 날아다니는 모습이나 목이 가늘고 긴 모양을 보면 펭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걷고 잠수하고 날아다니는 황제가마우지는 펭귄과 가마우지의 중간쯤 되는 종으로, 다윈이 진화론의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작은 무인도에서 아래쪽은 바다사자가 위쪽은 황제가마우지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모습이 보기좋았다.
◇ 바다사자와 황제가마우지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부의 파타고니아 대초원에서는 과나코를 만날 수 있다. 하늘에서는 콘도르들이 날아다닌다. 안데스의 높은 산맥은 서쪽 태평양에서 올라오는 습기 많고 더운 공기를 막아 눈으로 바꾸고, 산맥 동쪽 저지대 쪽으로 건조한 바람을 날려보낸다. 파타고니아에 광활한 사막과 초원이 펼쳐지는 이유다. 이 넓은 대자연은 오랫동안 서구 문명이 닿지 않았다. 그 덕에 원주민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야생동물과 어울려 오랫동안 살 수 있었다.
이 청정지역에 스페인 식민개척자들이 광산 개발, 농지 개척, 가축 농장 등을 만들면서 원래의 자연과 생태가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 아직은 지구에서 얼마남지 않은 태고의 자연과 야생이 남아있는 지역이다. 아르헨티나 칼라파테에서 루타40 도로를 타고 엘찰튼까지 다녀오는 왕복 8시간 그리고 칼라파테에서 국경을 넘어 칠레 토레스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나지막한 돌산 아래 끊임없이 펼쳐지는 초원, 바다같은 호수, 황량한 사막의 파타고니아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버스 창밖으로 가장 많이 보이는 동물이 과나코(Guanaco)였다. 무리를 지어다니는 과나코는 도로를 껑충껑충 뛰어다니거나 가로질러 가다가 멀찌감치 서서 쳐다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런 야생동물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하지만 이런 광경을 자주 목격하다보니 나중에는 익숙해졌다.
과나코는 발가락이 2개로 갈라진 낙타과에 속한다. 하지만 등에 혹이 없고 오뚝 솟은 두 귀와 긴 목과 다리는 마치 사슴이나 고라니를 보는 느낌이었다. 무리지어 다니는 모습이 마치 파타고니아 초원의 주인같았고, 서서 빤히 쳐다보는 모습은 이방인이 왜 우리 동네에 왔는지 물어보는 듯했다.
◇ 콘도르와 카라카라 독수리
파란 하늘에 큼직한 날개로 힘차게 날아가는 새가 바로 콘도르(Andean Condor)였다. 워낙 멀어서 목에 하얀 목도리를 두른 대머리 새라는 안데스 콘도르의 형체를 자세히 살필 수는 없었지만 천천히 날개짓하는 모습에서 하늘의 주인같은 위용을 느낄 수 있었다. 날개길이가 무려 3m나 되고 몸무게도 12kg이 넘는다고 한다. 안데스 콘도르는 남미 여러 나라의 신화나 민속에 나타나는 상징적인 새다. '철새는 날아가고'로 번역된 잉카의 민요 '엘콘도르 파사'는 잉카제국을 위해 죽은 영혼을 달래는 노래이기도 하다.
콘도르 외에 이번 여행에서 만난 인상적인 조류는 아르헨티나 땅끝 마을인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에서 만난 카라카라 독수리(Caracara)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맹금류가 날아다니거나 먹이를 사냥하는 용맹스런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마치 닭처럼 풀밭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봤다는 사실이다. 검은색 깃털이 난 머리와 주황색 얼굴, 흰 깃털이 난 목에 뾰쪽한 부리와 노란색의 날카로운 발톱은 분명 카라카라 독수리가 맞는데 뒤뚱거리는 모습이 우습다. 원주민들은 울음소리를 듣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 안데스에 사는 낙타의 후손들
고도 4000m 페루의 안티플라노 고원에서는 야생 과나코 외에 라마(야마), 알파카를 만났다. 라마와 알파카는 둘 다 낙타의 후예로 가축화된 동물들이다. 낙타처럼 심장이 다른 동물들보다 크고 물 없이도 오래 견딜 수 있어 고산에 잘 적응한다. 안데스지역의 상징적인 동물일 뿐아니라 이 지역의 문화와 경제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라마(Liama)는 머리를 봐도 낙타가 조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낙타처럼 안데스 고원에서 물건을 운반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이 이용되며, 가죽이나 털은 의복으로 활용된다. 수레나 마차가 없던 잉카시절에 라마는 30~40kg의 짐을 등에 지고 험한 산을 오르내릴 수 있으니 소중한 운송수단이었다. 라구나 네그로 호수 근처 초원에 방목된 라마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과나코가 가축화된 동물이 라마라면, 알파카(Alpaca)는 비쿠냐가 가축화된 경우라고 한다.
라마와 알파카는 형태가 매우 유사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일단 알파카는 라마보다 덩치가 작다. 라마는 길쭉한 얼굴과 끝이 살짝 안으로 휜 듯한 바나나 모양의 긴 귀를 가지고 있고 얼굴에 털이 거의 없다. 반면 알파카는 작고 둥근 얼굴에 짧고 쫑긋한 귀를 지니고 있다. 또 얼굴에 복슬복슬한 털이 많다. 털의 질도 차이가 있다. 라마 털은 거칠고 튼튼해서 로프나 담요를 제작하는데 주로 활용되고, 알파카의 털은 매우 부드럽고 따뜻해서 고급의류에 많이 사용된다. 양털보다 부드럽고 습기에 강해서 가치가 높다.
쿠스코에서는 알파카를 끌고다니는 전통의상을 입은 잉카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관광객들과 인증사진을 찍어주면서 팁을 얻는 사람들이다. 어린 알파카의 귀여운 모습을 보면 한번쯤 안고 사진을 찍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알파카는 라마보다 온순하다. 하지만 풀을 먹는데 방해하면 침을 뱉는 습성이 있다. 알파카는 고급의류뿐만 아니라 이처럼 관광산업에도 활용되면서 페루 경제에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과나코, 라마, 알파카 외에 비쿠냐도 있다. 비쿠냐(Vicugna)는 과나코처럼 야생동물로, 몸무게가 35~65kg 정도로 낙타과 중에 가장 작다. 야생에서는 거의 멸종 상태라고 한다. 배와 다리 아래쪽에 흰털이 나 있다. 비쿠냐의 털은 세계에서 가장 가볍고, 곱고 부드러우며 보온성이 탁월하다. 하지만 아주 가늘고 2~3cm 정도로 짧은데다가, 1마리에 200g밖에 나오지 않을 만큼 귀해서 최고의 자연산 털로 평가 받는다. 최상급 캐시미어보다 10배 이상 비싸다고 한다. 잉카제국 시절에도 4년마다 황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차크라는 의식을 치른 후 제모하고 풀어줬다고 한다. 이렇게 귀한 털을 가진 놈이니 인간의 눈을 피해 스스로 살아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페루 국기의 가운데 새겨진 문양에 들어가는 유일한 동물인 비쿠냐는 국제적 멸종위기 보호종이어서 함부로 거래할 수 없다. 최고급 섬유인 비쿠냐 털은 페루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유통과 판매를 할 수 있다. 페루 정부는 보호구역에서 비쿠냐를 증식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쿠스코 시내에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알파카 모직물 가게는 무척 많지만 비쿠냐 의류를 파는 가게는 'KUNA'라는 가게 하나뿐이었다.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스카프가 1000만원, 오버코트는 5000만원이 넘는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 고원지대 호수의 물새들
알티플라노 고원에는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담수호뿐 아니라 지각변동으로 바다가 솟아올라 호수가 된 염수호도 있다. 고원지대 호수에서 만난 물새들이 여럿 있는데 이 가운데 노랑부리물닭, 안데스 거위 그리고 플라밍고를 소개한다.
방목한 라마를 만난 호수가 라구나 네그라, 즉 '검은 호수'다. 암석 무더기 사이에 숨어있는 오아시스같은 호수에 물새들이 없을 수 없다. 염수호인지 담수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물이 흘러 초원을 만들고 그 초원에 라마와 양떼들을 방목하는 것으로 봐서 담수호가 아닌가 싶다. 이 호수 물가, 그리고 근처 초원에서 만난 새들이 노랑부리물닭과 안데스 거위들이다.
안데스 거위(Andean Goose)는 머리와 몸이 흰색이고 날개와 꼬리는 검은색이다. 부리와 다리 그리고 발은 붉은 색이다. 3000m가 넘는 고원지대 초원과 습지, 호수 기슭에서 서식한다. 노랑부리물닭(Red-gartered Coot)은 이름처럼 노란색 부리에 붉은색 반점이 있다. 뜸북이처럼 몸집도 통통하다. 머리와 몸 그리고 깃털이 모두 검은색이다. 부리의 노란색은 이마까지 이어져 있고, 발목근처에 붉은색 가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란 부리를 보고 이름을 붙였고, 외국인들은 붉은색 발목에 집중했다. 호수 인근에 서식하면서 주로 물속 수생식물을 먹고 산다. 닭이라는 이름이 붙은 걸로 봐서 나는 재주는 없지 않나 싶다.
플라밍고(Flamingo)는 알티플라노 고원의 리오 알라타 강변에서 탐조했다. 이 고원에는 바다가 융기해서 호수가 된 염수호가 많다. 아마 이 강도 염수호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강으로 유입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고원의 플라밍고, 즉 홍학들이 염수에 사는 갑각류나 남조류 플랑크톤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얕은 물에 긴 다리로 서서 평화롭게 먹이 활동을 하고 있는 플라밍고를 멀찍이서 카메라에 담았다. 날개부분의 깃털에 붉은색이 선명한 것을 보니 제임스 홍학이다. 멀리 설산을 배경으로 얕은 강가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플라밍고 무리의 모습을 본다는 것이 살짝 비현실적이었다.
◇ 펠리칸과 훔볼트펭귄
리마 여행 중 산로렌초섬에서 펠리칸과 훔볼트 펭귄도 만났다.
펠리칸은 우리나라에서는 '사다새'라고 한다. 주머니처럼 생긴 커다란 부리가 특징인데 부리 아래쪽도 피부여서 삼킨 먹이에 따라 부풀릴 수 있다. 몸길이가 1.5m에 이르고, 몸무게도 5~10kg 정도의 큰 새다. 얼마전 조류독감이 확산돼 페루 펠리칸이 집단폐사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긴 목을 빼들고 섬 위를 새까맣게 덮고 있는 펠리칸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웠다.
산로렌초섬에서는 65cm 크기의 작고 아담한 훔볼트펭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남극처럼 추운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펭귄이 적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페루 리마 앞 바다에 있는 섬에 산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 펭귄들은 훔볼트 해류 덕분에 이곳에 정착했다. 훔볼트는 남극에서 남미 태평양 해안을 따라 적도쪽으로 흐르는 해류다. 남극에 살던 펭귄들이 차가운 해류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자리잡은 것이다. 날개는 퇴화돼 헤엄치기 적당한 지느러미 역할을 한다.
훔볼트펭귄은 검고 흰 경계선이 눈 뒤부터 목까지 이어져 있고, 배는 흰색인데 가슴을 가로지르는 검은 선이 있다. 훔볼트 펭귄의 특징인 주위가 분홍색인 부리를 내밀고 두 발로 반듯하게 서서 당당하게 우리가 타고 가는 배를 내려다 보고 있다. 훔볼트 펭귄도 무분별한 어획과 기후변화로 멸종 취약종이라고 한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운좋게 만난 동물들을 정리해봤다. 알파카와 라마처럼 가축이 된 동물도 있지만 대부분 남미라는 특별한 자연환경에서 야생으로 살아가는 동물과 조류들이다. 때가 덜 탄 자연환경 덕분에 그리고 이들과 공존을 선택한 남미 사람들의 생태에 대한 이해 덕분에 이들이 살아갈 수 있다. 무분별한 개발과 자원 낭비로 지구온난화가 가속되고 지구 생태계가 날로 훼손되고 있다. 파타고니아, 안데스 산맥과 같은 남미의 생태계는 잘 유지되고 이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물들과 오랫동안 공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이상홍
(현)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여행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숲 해설가
(전)정보통신기확평가원 원장/ KT파워텔 대표/ KT 종합기술원 부원장/ KT 중앙연구소장
저서=까미노, 꽃중년이 걸은 꽃길, 꽃의 향기 소통의 향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