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관광두레 주민사업체 연계 '지역여행상품' 공모
2025-03-10
남미는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서구의 침략으로 시작된 역사의 흔적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한달 가까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등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20편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태고의 자연경관, 역사, 그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가는대로 담았다. 남미를 다녀온 분들에게는 추억 돌아보기로, 여행을 계획중인 분에게는 사전정보로, 남미라는 외딴동네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9편 [꽃중년 여행노트] 세상 끝에서 만난 '죄수들의 도시'>에서 이어집니다.
우리는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 국립공원을 둘러본 뒤 아르헨티나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 시내로 돌아왔다. 작은 골목에 알록달록하게 칠한 예쁜 가게들이 눈길을 끌었다. 가게들의 벽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상징하는 듯한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 땅끝 등대 그리고 펭귄 그림들이 줄줄이 그려져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걷다보니 출출했다. 우리는 저녁식사로 이 동네의 최고 먹거리 '킹크랩'을 먹기로 했다.
사실 아르헨티나에서는 스테이크가 최고의 먹거리로 꼽힌다. 소를 넓은 초원에서 방목해서 키우기 때문에 맛도 좋고 가격도 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입에 살살 녹는 부드러운 투뿔 한우의 맛을 기대한 탓일까? 전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탱고쇼를 보면서 먹은 스테이크의 맛은 내겐 기대 이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르헨티나의 킹크랩을 맛보기로 했다.

◇ 우수아이아의 먹거리 '킹크랩'
결론부터 말하면 '킹크랩 먹기'를 정말 잘했다. 크기나 맛이 기대 이상이었다. 1인 1킹그랩! 국내에서 러시아산 대게나 킹크랩을 먹어본 적이 있었지만 우수아이아의 '킹크랩'의 맛은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등껍질과 다리가 빨갛게 익은 큼직한 킹크랩이 개인접시에 한 마리씩 올라왔다. 가위가 있었지만 장갑을 낀 손으로 입 주변에 흔적을 남기며 다리 하나하나를 뜯어먹는 맛에 나로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거기에 아르헨티나 최고의 와인 말백과 빙하수까지 곁들이니 꼬였던 속이 다 풀렸다. 다른 메뉴없이 킹크랩만으로 배를 채우기는 처음이었다.
든든하게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걸었다. 길거리 옆 가게에서 통 양을 굽는 아사도(Asado)가 보였다. 아사도는 껍질만 벗긴 양의 네 다리를 활짝 벌려 숯불에 멀찍이 올려놓고 기름이 모두 빠지도록 익히는 바비큐 방식이다. 호기심에 들어가려다 멈칫 했다. 배도 부른데다 아직 아르헨티나에 며칠 더 머물 계획이어서 다음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 땅 끝 전쟁의 승리자는?
남쪽 끝 황량한 도시인 우수아이아의 홍보포인트는 남쪽 끝 도시, 땅 끝(Fin del Mundo)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땅 끝이라 주장하는 데가 참 많다.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에 가면 대서양 해안에 피니스테레(Finistere)라는 도시가 있다. 도시 이름 그대로 '땅 끝'이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한 산티아고 순례자 중에 일부는 걸어서 또는 버스를 타고 땅끝 피니스테레에 당도해 순례를 마치기도 한다. 예전에는 땅 끝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며 순례길을 걷는동안 신었던 등산화를 태워 없애기도 했다.
포르투갈에도 땅 끝 마을 '호카곶'(Cabo da Roca)이 있다. '세상의 끝, 바다의 시작'이라는 표지판을 세워 대서양의 시작을 알린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던 시절, 이 절벽이 땅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 땅 끝에 서서 저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을까라는 무한한 상상을 했던 포르투갈 사람들은 결국 배를 타고 나가 맨처음 신대륙을 발견한다. 우리나라도 전라남도 해남에 '땅 끝 마을'이 있다.
남미에서도 우수아이아와 함께 칠레가 푼타 아레나스 지역을 통해 땅 끝 경쟁을 벌인다. 아르헨티나는 남극으로 가는 항구가 있는 우수아이아를 땅 끝, 최남단 도시로 홍보한다.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에는 땅 끝 기차가 운행이 되고 땅 끝 우체국이 있다. 비글해협 내의 무인도에는 세상의 끝 등대를 세운다.
사실 우수아이아보다 더 남쪽에 칠레의 땅인 나바리노섬, 케이프혼 국립공원이 있어 지리적으로 진짜 땅 끝을 보유한 나라는 칠레다. 하지만 땅 끝, 세상 끝, 남쪽 끝 스토리를 제대로 만들고 땅 끝 마을 방문 스탬프를 찍어주며 홍보에 성공한 아르헨티나가 진정한 승자처럼 느껴진다.

◇ 유람선 타고 비글 해협 항해
다음날 아침 비글 해협을 향하는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이 지역에서 진화론을 연구하기 위해 탐사를 했던 찰스 다윈의 탐사선 이름이 '비글호'였다. 우수아이아 항구에서 유람선을 타고 약 3시간동안 해협을 돌아봤다. 바람이 제법 부는 찬 날씨이긴 했지만 아르헨티나 특유의 흰 구름과 하늘색 하늘은 여전했다. 항구에는 남극을 향하는 배가 정박해 있었다. 관광안내소에서는 최남단 항구 도시를 인증하는 스탬프를 관광객들에게 연신 찍어주고 있었다.
항구를 벗어난 유람선 뒤쪽에는 아르헨티나 국기가 바람에 힘차게 펄럭거리고 있었다. 유람선 승객들은 그 국기 옆에서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에 다녀갔다는 인증을 남기기 위한 의례적 절차 같아 보였다. 하지만 흔들리는 유람선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몸을 바로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유람선은 바다 한 가운데 바위섬에 이르자 속도를 줄였다. 바위섬 위에 바다사자와 황제 가마우지가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수면에 가까운 아래쪽에는 덩치 큰 바다사자가 모여 있고, 그 위쪽으로 황제 가마우지가 바위를 새까맣게 덮고 있었다.
황제 가마우지는 검은 등에 하얀 배가 두드러져 보이고 두 발로 서서 오종종하게 걷는 모습이 흡사 펭귄 같았다. 그러나 펭귄이 아니라 황제 가마우지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큼직한 날개를 펴고 물 위로 날라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펭귄과 가마우지 중간쯤 되는 종으로 걷고, 잠수하고 날기도 하는 황제가마우지는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의 증거이기도 하다.

바위섬은 엄청나게 많은 바다사자와 황제 가마우지로 비좁아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들처럼 영역을 차지하려고 다투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처럼 땅 끝 경쟁을 하지도 않고, 파라과이와 주변국들처럼 더 나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 건 전쟁도 하지 않는다. 위는 황제가마우지가 그 아래는 바다사자가 영역을 나눠 평화롭게 살고 있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 있는 큰 섬에 잠시 정박했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을 오르며 섬을 돌아보는 산책을 10여분간 할 수 있다. 유람선에 갇혀 있던 답답함을 풀 수 있어 좋았다. 이 지역은 크로아티아에서 온 어부가 정착해서 살았다고 한다. 긴 나무 기둥의 위를 묶고 주변을 풀로 둘러싼 원추형 움집과 함석으로 지은 대피소 같은 집이 남아있다.
유람선은 저멀리 등대가 보이는 섬을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돌섬에 주황색과 흰색이 칠해진 등대가 보였다. 이 유람선의 마지막 목표인 세상 끝 등대 '에끌레어 등대'(Les Eclaireurs Lighthouse)다.
등대의 불빛이 비글 해협을 지나 남극으로 가는 배의 밤길을 지켜주고 항로를 안내한다. 영화에서 빨간 등대는 삶의 방향을 잃고 헤멜 때 갈 길을 제시해주는 상징이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Happy Together'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은 이 등대로 온다. 이 등대는 슬픈 기억을 모두 지워줄 수 있는 전설의 등대이기 때문이다.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유람선은 이 등대를 한 바퀴 돌아 우수아이아 항으로 달렸다. 우수아이아에서 마지막 여정을 마무리했다.

글/ 이상홍
(현)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여행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숲 해설가
(전)정보통신기확평가원 원장/ KT파워텔 대표/ KT 종합기술원 부원장/ KT 중앙연구소장
저서=까미노, 꽃중년이 걸은 꽃길, 꽃의 향기 소통의 향기 등